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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Oct 04. 2024

미국인 남편과 살기



나의 남편은 나보다 더 한국 사람 같은 면이 있다. 나는 다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정이 없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을 그을 때는 확실하게 그어버린다. 정말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남편에게서는 예전 우리나라 시골의 인정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마치 나는 서울 사람이고, 남편은 시골 사람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도 한 번 먹으라고 권해서 아니라고 하면 더는 권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았을 때, 먹고 싶으면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먹기 싫으면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게 진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번 권하는 건 나에게 불필요하게 느껴졌고, 오히려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 두 번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만난 첫날부터 계속 뭔가를 권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내가 싫다고 해도, 계속 먹어 보라고 권하고,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혹시 몰라서 다시 권한다. 우리 딸이 한국에서 오래 살았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반복적인 권유 때문에 아주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자라온 환경과 너무 달랐던 그 '계속 권하는' 문화가 딸에게는 참 힘들었던 모양이다. 남편의 이런 모습은 마치 오래된 한국의 시골에서 자란 사람처럼 정감 있고, 인정이 넘치지만, 때로는 나에게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편은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부모를 위해 목숨을 바치던 그 시절의 아들 같은 극강의 효자다. 나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 아내인 내 입장에서는 정말 고통의 순간도 많았다. 시어머니께서 92세 때 넘어지셔서 수술을 받고 거동의 한계가 생기게 되었을 때,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남편과 시누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남편은 절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시어머니 역시 틈만 나면 요양원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다. 시누이도 그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강하게 나서지 못했다.


결국, 우리 집에서 한 달, 시누이 집에서 한 달씩 번갈아가며 시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그러자 남편은 모든 일을 그만두고 혼자서 시어머니를 돌봤다. 어머니를 화장실에 모시고 가고, 용변 후 처리까지 남편이 다 했다. 어머니께서는 용변만 보실 뿐 나머지 모든 일을 남편이 해드려야 했으니, 그 수고가 얼마나 큰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시어머니는 딸보다 훨씬 상냥하고 다정한 아들을 늘 화장실로 불러들이셨다.


시간이 지나 시어머니의 치매가 발전되면서 식사를 잘 못하시고, 씹는 법을 잊어버리시기 시작하자, 남편은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씹는 법을 보여 드렸다. "엄마, 이렇게 씹는 거예요." 하며 입을 크게 벌려 씹는 모습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보여 드렸다.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시어머니가 음식을 삼키실 수 있도록 도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어머니께서 같은 질문을 하루에 20번씩 하셨는데도, 남편은 매번 똑같이 상냥한 목소리로, 똑같은 손짓과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인내심과 한결같음은 정말 세계 최고였다. 이 모든 일을 4년 동안 한결같이 해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경이로운 점은, 남편이 이 일을 의무감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은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틈만 나면 손을 잡고,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어머니를 보살폈다. 그의 사랑과 헌신은 정말 놀랍기만 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극도로 의지하거나, 결혼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결혼식에서 맺은 서약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어머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기에, 자신의 결혼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머니를 돌보았고,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결국 어머님은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우리가 함께 어머님을 모시고 살던 당시에는 자주 싸우곤 했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5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옆집의 앤 할머니는 우리가 잘못 살고 있고, 어머님께서 잘못하고 계시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녀는 결혼 서약을 지키지 않는 남편 스티븐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미국에서는 아내에게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남편이나 시누이는 나에게 절대 "이렇게 해야 한다, "라던가 "왜 하지 않느냐"며 원망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가 그들의 부모이니, 돌봄도 철저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미국에서 남편의 위치는 가끔 애처로울 정도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국 남자들의 운명처럼 보이곤 한다. 물론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가사 분담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어떤 때는 아내의 히스테리까지 묵묵히 받아들이며 사는 남편들을 보게 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빠들을 수퍼맨으로 만드는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잘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일수록 더 ‘클래스가 있고 품격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미국 남편들은 집 안팎에서 아내를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남편이 아내를 하대하거나 잘 대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인격에 손상이 간다고 여길 정도다.


미국 부부의 특징 중 하나는 남편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늘 예의를 갖추어 대화하는 점이다.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강하게 반박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알고 지낸 미국 부부들 사이에서 사이가 나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내가 가르쳐 온 가정이 약 100 가정은 될 텐데, 그중 이혼한 가정은 단 한 가정뿐이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배우자의 흉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부간의 이러한 예의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느낀다. 한 번은 내 친구가 우리 남편에게 한국에서 흔히 하는 30대 아내, 40대 아내, 50대, 60대, 70대 아내를 나쁘게 빗대어 표현하는 농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왜 아내들을 깎아내리는 농담을 만들어 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당히 어색해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부부 관계는 참 다른 문화적 특성을 가진 것 같다.


한 가지 미국인 남편의 좋은 점을 자랑을 하자면, 아니 미국인들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미국에는 아줌마라는 말이 없다. 여자 아니면 남자다. 요즘은 다른 젠더도 생겨났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부정적 의미의 소위 '아줌마'는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남편들은 아내를 '여자'로 대우해 준다. 아내는 남편을 남자로 여기고 말이다. '아줌마'라는 고약한 제3의 성을 만들어낸 문화는 여성을 억압하는 우리 여자들의 적이다. 그래서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아줌마로 살아가는 여자는 미국에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 남편의 친구들의 아내 두 명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58세였고,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졌지만, 그들의 자신감만큼은 정말 놀라웠다. 그들은 어떤 남자가 자신들보다 다른 여자를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분해하며 "어떻게 우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억울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58세에 저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때 느낀 것은, 나이가 들어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을 잃지 않는 태도였다.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매력적인 여성으로 여기고, 그 믿음이 말과 행동에서 묻어 나왔던 것 같다. 이제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나를 보고 웃어주는 남편, 꼭 붙어 앉아 TV를 보고, 옆에서 늘 손을 잡아주는 남편, 항상 예쁘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남편, 나이가 들어도 여자 대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남편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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