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
로도스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바닥이 달랐다는 거예요.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운치 있게 깔린 돌길이 인상적이잖아요? 저는 그런 길을 걷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이곳은 좀 특별했습니다. 납작한 돌 대신, 같은 크기의 자갈들을 뾰족하게 박아 넣은 도로였거든요. 그 덕분에 캐리어를 끌기도 꽤나 힘들었고, 그 요란한 바퀴 소리 때문에 캐리어가 망가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어요.
저희 호텔이 있는 골목길이에요. 이런 골목이 많아요. 자갈길이 특이하죠?
우리가 묵은 곳은 올드타운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숙소였습니다. 오래된 외관에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내부는 리노베이션이 잘 되어 쾌적했지요.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 호텔이었고, 2층에는 객실이 세 개 정도뿐이라 조용하고 아담했습니다. 좁고 긴 계단을 오르내리며,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고풍스러운 골목이 맞아주던 순간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들었어요.
호텔 외부는 중세의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아주 잘 리노베이션이 되어 있어요.
좁다랗고 긴 계단을 올라오면 3-4개의 객실이 2층에 있어요.
올드타운 골목길에 자리한 청동, 메탈, 구리로 만든 작품을 파는 상점
올드타운의 매력은 지도에 찍힌 명소가 아니라, 그 사이사이를 잇는 작은 길들에 있습니다. 찐 올드타운이죠. 그것도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한 곳입니다.
커브를 돌면 나타나는 돌계단, 창가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 담쟁이가 뒤덮은 돌담,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중세의 성… 그런 장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 감각마저 잊게 됩니다. 어느 순간엔 ‘지금이 몇 세기일까?’ 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이곳은 천천히 길을 잃는 시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올드타운 중앙에는 여전히 거대한 성이 남아 있습니다. 돌로 쌓아 올린 성벽과 아치형 창문, 허물어진 담장 사이로 스치는 바람에서 오래된 역사의 숨결이 전해집니다.
특히 ‘기사단의 거리’라 불리는 좁은 골목은 지금도 중세 기사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치 과거의 시간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었지요.
터키시 커피숍인데 내부가 하도 특이해 보여 엄청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날 갔는데, 커피는 제 취향이 아니더군요. ㅎㅎ
밤에 걷다 보면 이렇게 운치 있는 레스토랑들이 중앙로에서는 비껴간 다른 샛길에 있더라고요. 돌 건물들과 고목들이 세월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곳도 너무 예뻐서 가보고 싶음요.
로도스섬의 올드타운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수천 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박물관 같았습니다.
돌길 위에서 발자국마다 역사가 겹겹이 밟히는 듯했고, 낯선 듯 낯익은 풍경 속에서 ‘여행’이란 결국 이렇게 걷고, 보고, 느끼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시간의 층이 포개진 도시에서 잠시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돌담에 기대앉아 지나가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노을빛이 성벽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이곳이 단지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보여주었지요.
돌길을 천천히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행에서 찾는 건, 특히 그리스 여행에서 찾는 건 역사와 문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간의 무게와 흔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로도스섬 올드타운은 오래도록 제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로도스 성. 중세기사와 십자군에 대한 흔적이 가득한 곳
올드타운 중심에는 십자군이 집결했던 거대한 중세 성이 있습니다. 성 주변에는 각국의 기사단 흔적이 남은 건물과 조각들, 허물어진 유적들이 여전히 조용히 남아 있었어요.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아치형 창문과 낡은 담장 사이로 역사의 숨결이 바람처럼 스쳐갑니다.
14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축출된 성 요한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은 이곳 로도스로 와 거대한 요새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그랜드 마스터 궁전(Palace of the Grand Master)인데, 궁전이자 병원, 무기고, 행정 중심지였던 이곳은 지금도 위풍당당하게 남아 있습니다.
두 겹의 성벽과 해자,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 기사단의 문장들이 새겨진 벽을 보고 있노라니, 세계사 시간에 글로 배우며 상상만 하던 십자군 전쟁의 기사들이 실제로 이곳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작전을 짜고 출동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특히 ‘기사단의 거리’라 불리는 좁은 골목은 당시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독일 기사들이 머물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중세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잔틴의 영향을 받아 모자이크로 바닥을 정교하게 장식했고 건축양식도 특이해 보여요.
첫날 저녁, 올드타운 커피숍 주인의 추천으로 성 근처의 레스토랑 마마 소피아(Mama Sophia)를 찾았습니다.
문어구이, 가리비 구이, 신선한 빵과 올리브유 모두 훌륭했지만, 단연 잊을 수 없는 건 그릭 샐러드였습니다. 드레싱은 단순하게 올리브오일과 레드와인 비니거뿐이었는데, 그 신선함과 깊은 풍미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다음 날 브런치까지도 다시 그곳을 찾을 정도였으니까요.
이후로도 곳곳에서 그릭 샐러드를 먹어봤지만, 마마 소피아의 그 맛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올리브오일의 차이가 만든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그릭, 지중해식 식사입니다.
다음날 브런치도 다시 그곳에서 해결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 한 접시는 잊히지 않았습니다.
올드타운 성곽을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바다. 올드타운의 유적지
동화 같은 피노키오 샵
올드타운을 걷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밀어내며 산책하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돌담 사이로 피어난 꽃, 반질거리는 돌바닥, 장신구를 파는 작은 상점, 커피 향이 풍기는 샛길… 그리고 언제나 길모퉁이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까지. (길냥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낮에는 바람이 유난히 느리게 불고, 밤이 되면 골목마다 노란 조명이 켜져 마치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차분했고, 낯설지만 마음을 이상하게 편안하게 해주는 곳.
로도스의 올드타운은 특별한 여운을 주는 장소였어요.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오래된 돌의 숨결이 속삭여주는 것 같았어요.
로도스섬은 결국 걷는 여행이었습니다.
작고 복잡한 골목, 중세의 흔적, 골목 어귀의 커피 향까지.
처음엔 낯설었지만, 익숙해질수록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마법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트리비아 둘:
1. 로도스 섬은 북쪽으로는 에게해가 흐르고, 섬의 남쪽으로는 지중해가 흐르는 곳입니다.
2. 터키식 커피와 그리스 커피의 다른 점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커피 (Greek coffee)라 부르고 터키에서는 터키 커피 (Turkish Coffee)라고 부른대요. 결국 같다는 이야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