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못 가요!' 집에 안 보내주던 그리스 가족
차즈키의 마무리로 후추를 열심히 뿌리더니 또 양고기 요리에 열심히 후추를 뿌려줍니다. 제 남편은 후추만 뿌리고 또 뿌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슬쩍 보면, 역시나 후추. 사실 제 남편은 흔히 떠올리는 ‘요리하는 미국인 남편’과는 거리가 멉니다. 평소엔 주방에 거의 들어오지 않지만, 이번엔 그래도 파프리카 속 채우기, 그리스식 만두 만들기까지 게다가 양고기는 주물럭 주물럭 양념을 열심히 섞어주는 모습이 은근 흐뭇했어요.
여행을 할 때 참여하는 쿠킹 클래스가 참 재미있습니다. 미국 와인 컨트리에서 사워도우 빵 만들기, 발리에서의 쿠킹 클래스도 기억나지만, 크레테에서 경험한 이번 수업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흥 넘치고 즐거운 시간이었거든요.
수업은 남매 셋이 함께 주관했는데, 장소부터 남달랐습니다. 하니아(Chania)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 높은 지대라 멀리 눈 덮인 산맥이 보이고, 아래로는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야외 마당에서 진행된 수업은 동물농장 투어부터 시작됐습니다. 아기 양, 말, 닭, 그리고 순둥이 강아지들까지—아이들이 양을 안아주고 우유를 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어요.
본격적인 요리는 차즈키로 시작했습니다. 브루셰타와 비슷한 애피타이저, 튀겨 만든 그리스식 만두, 파프리카 속에 야채와 페타치즈, 올리브오일을 채워 구워낸 요리, 마지막으로 양념한 양고기까지—푸짐하고 다채로웠습니다. 그리스 음식에는 역시 페타치즈와 올리브오일이 정말 많이 들어가네요. 우리네 마늘과 고춧가루 같아요. 이 집에서도 직접 만든 올리브오일을 사용했는데, 너무 맛이 좋았어요. 한 병만 사 온 것이 아쉬워서 주문하려고 국제 우편을 알아보았는데 운송비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붙임성이 좋아 누구와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남동생 파라스케이아스가 식사가 한창일 때 갑자기 만돌린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누나 소피아는 상냥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을 이끌었고, 막내도 늘 웃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즐거움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이 삼 남매의 아버지가 퇴근 후 합류하시고, 엄마도 퇴근 후 합류하시고, 큰형, 잠시 후엔 형수와 아기, 온 가족까지 함께 앉으면서 식탁은 어느새 가족 파티가 되어버렸습니다. 시끌벅적한 대화와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온 뒤에는 막내가 만돌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우리 아이들까지 하나씩 불려 나와 함께 춤을 추는 순간, 이젠 진짜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몇 번을 쿠킹 클래스 시간이 지났으니 집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우리를 보내주지 않았어요. "안돼요, 아직 못 가요!"
이런 즐겁고 흥겨운 쿠킹클래스가 또 있을까요? 크레테 섬에서 쿠킹 클래스를 하는 곳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에요. 5군데 이상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쿠킹 클래스는 tripadvisor나 에어비앤비의 Experiences에 나오지 않는 곳이에요. 영국 AI 회사에 다니고 있는 마르코의 동료가 마침 크레테 섬 출신이라 그분이 소개를 해주었어요.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정보 드릴게요. 이들의 상호는 Veggera이고 링크는 veggera 닷컴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이들 가족뿐 아니라 그리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람 좋은 민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성이 좋았어요. 겉으로만 친절한 게 아니라, 마음 깊숙이 선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맘속으로 나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할 정도로 선한 것 같아요. 그런 진심이 함께 해서였겠죠? 베게라(Veggera)에서의 쿠킹 클래스는 단순한 요리 수업을 넘어, 우리 가족에게 그리스 여행 전체에서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