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사랑의 역설

by 임ㅎㅎ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라떼는 말이야


시대를 잘 반영해 주는 웃픈(?)유행어인 것 같습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요즘 청년들에게 이전 세대와 다른,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누군가는(흔히 '꼰대'라 불리는) 요즘 청년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희생할 줄 모르며 이기적이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으나, 저는 청년들이 정말 이기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너무 사랑하는 게 문제가 되지요.



우리는 대화중 절반 이상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한다. (셀레스트 헤들리 저, 말센스中)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우울증이 증가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나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나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게 되어 버린 걸까요? 자신을 사랑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역설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나를, 사랑받지 못하게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을 누군가가 진정성 있게 사랑해 준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세상은 말합니다. "착하면 손해 본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사실일까? (물론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제 자신이 가장 소중합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제 나름대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실은 2019년 사서로 근무했던 도서관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존중해 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세 가지를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1) 첫 번째로 한 것은 '인사'였습니다.

출근할 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퇴근할 때는 굳이 한명한명 찾아가 인사했습니다.


2) 두 번째는 '희생'입니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좀 더 일하면 다른 사람이 더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진해서 도맡아 했고 예전에는 드러내기 위해 일했다면 이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3) 세 번째는 '꾸준함'입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한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슬슬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타적인 마음으로 시작했다지만 사실 이것마저 이기적인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몸이 힘들었습니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예전에 앓았던 달팽이관 어지럼증이 도져서 내원한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하지만 한 학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남은 두 달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실험(?)은 진행되었습니다.




근무가 종료되는 마지막 달에는 드디어 열매가 맺혔던 것 같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제 노력이 조금씩 쌓여 결국 티가 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들께서 저만 따로 일을 빼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같이 일했던 친구는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저를 좋게 봐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친해지고 싶다고 대뜸 다가오더니 퇴근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안양 사는 그 친구가 안산 사는 저를 그때마다 차로 데려다주기까지 하길래, 어느 날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냐?" 물어보니 그 친구 대답이 제가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것이 놀라운 비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열심히 하려던 것뿐인데 결국 저는 점점 더 편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후로 이 경험을 가슴에 새겼고 지금은 1년을 휴학하고 매일 봉사활동을 다니며 장애인 복지시설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들에게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잡일을 하는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봉사를 가는 매 순간이 즐겁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힘들 때가 사실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의 감추어진 보화가 여기에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기에 저는 삶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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