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탈출, 미용실, 노잼인생
다시는 mri 안 찍는다.
는 불가능. 6개월 뒤에 진행 상황 검사 받아야 함. 폐소공포증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괜찮겠지 했는데 문제는 좁은게 아니었다. 그 소리가….!!!!!!! 나는 소음이래서 그냥 기계 웅웅거리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근데 진심으로 전쟁난 줄 알았다. 귀마개 안 했으면 진짜 고막에 문제 생길 것 같은 소음. 팔자좋게 한 십오분 자다 올까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 건지. 결과라도 좋았으면 덜 억울?했겠지만 결과도 별로다. 일단 탈출 맞고 신경이 눌려서 저린 거였다. 그래도 신경관이 두꺼워서 남들보다 통증이 덜한 거란다. 일단은 약물 치료 먼저 하고 경과 보기로 했다.
드디어 머리 잘랐다. 비싼 염색하고 아까워서 고이고이 기르다가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서 잘랐다. 머리 흘러내리는 거, 안 묶어서 지저분한 거 다 못 참는 사람이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단발로만 지내왔는데 오랜만에 단발로 돌아오니 새삼스럽다. 단발이 좋은 건 머리를 자를 때마다 그 머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잘라내 버리는 것 같아서다. 좋은 일이야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기억되지만 나쁜 일들은 잊어버리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럴 때 머리를 자르면 그 시간들을 잘라내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예전부터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정성들여 관리하는 걸 좋아했다. 허영심같은 거라고 하는데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허영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준다면 나쁠 건 없지. 윤기나는 머리카락과 거스러미 없는 깨끗한 손톱은 나를 예뻐하는 가장 쉬운 방법 아닐까.
생각해보면 참 재미없는 삶을 산다. 일어나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청소하고. 주말에는 대청소하고 유튜브 좀 보다가 잔다. 하루하루는 되게 바쁜 거 같은데 뭐라도 한 자 써보려 하면 한 게 너무 없다. 남들도 이렇게 사나 싶어서 SNS 돌아보기를 하면 나 말고는 다 재밌게 살고 있는 거 같다.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하고. 나는 여행도 별로고 취미도 전부 책상 앞에 붙어 앉아 하는 것들 뿐이다. 등산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허리 상태로는 헬기 불러서 내려와야할 지도 모를 상황이라 엄두가 안 난다. 그러니 주구장창 집에만 있는 거다. 누가 그러더라 집에서 하는 취미가 많다는 건 삶의 질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증거라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일부러라도 밖에 나가려고 극장에 영화도 보러 가곤 했는데 그나마도 괜찮은 영화가 없으니 나갈 일이 또 없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60,70에도 이러고 있으면 어쩌지? (이런 말 하면 결혼 안 해서 그런 거라는 결혼 무새들이 있어서 입 밖으로는 내지 않지만) 근데 생각해봤자 딱히 뭐 할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늘 구경하다 잠들었다. 적고 보니 진짜 노잼 인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