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현관은 고요함마저 숨을 죽인 공간이다.
드넓게 펼쳐진 거실에서 밀려오는 암흑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멈춰 서있는다.
널브러진 신발들은 창 사이로 스미는 달빛에 젖어 그 윤곽이 또렷하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몸을 숙여 주섬주섬 신발을 정리하였다.
얼마 전만 해도 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하이힐 몇 켤레가 눈에 뜨였다.
부친과 새어머니가 운영하는 성인주점은 밤을 팔아야 먹고 사는 곳이었다.
별이 지는 새벽이 되어 문을 닫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이른 해가 뜬 등굣길에조차 두 사람의 신발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다섯 살 터울의 형은,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사라졌다’.
대학 진학 실패 후 부친과의 마찰이 끝없이 반복되던 어느날, 그는 집에 있던 나를 내쫓고 집 문을 걸어 잠갔다.
영문도 모른 채 현관 문을 두드리며 형에게 외치던 나는, 곧이어 들려오는 굉음에 예사롭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어딘가에 물건들이 부딪쳐, 깨지고 박살나며 산산조각나는 소리.
외출했다 돌아온 부친이, 강제로 문을 개방하는 순간까지도 ‘공포’는 계속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광경에 잠시 말문을 잃었던 부친은 이내 격노하였고,
냉장고를 발로 차며 부수던 형은 부친보다 더한 괴성을 지르며 부친에게 달려 들었다.
옥신각신 끝에 형은 부친을 넘어트렸다.
그리고 넘어진 그의 면전에 입 밖으로 내어선 안 될 말들을 퍼부었으며,
손에 든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집을 뛰쳐나갔다.
이후로 작정한 사람처럼 모든 연락을 끊은 그의 행방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부친과 새어머니는 그에 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였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처럼 취급되었다.
그의 ‘완벽한 실종’ 뒤로 이 넓은 집은,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만 남은 공간이 되었다.
그가 미처 다 부수지 못한 몇몇 물건은 모습 그대로 덩그러니 자리에 남아, 가끔씩 그날의 혼란을 떠올리게 하였다.
우두커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자니 배가 고파왔다.
학교 점심 이후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없다.
손목시계의 조명을 켰다.
10시.
밥솥을 열자 약간의 쉰 냄새와 뜨거운 증기가 동시에 코끝을 찌른다.
온기 없이 솥바닥에 눌어붙은 국을 조금 덜고, 뻑뻑하여 떨어지지 않는 냉장고를 힘주어 잡아당긴다.
플라스틱 병마다 가득 담긴 보리차.
볶은 멸치와 보리새우들로 들어찬 커다란 반찬통 두 개.
조그만 반찬 그릇에 그것들을 옮겨 담는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아마 일주일 전도 이 반찬이었을 것이다.
이것들은 ‘내버려’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전등 스위치를 올릴지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귀찮아졌다.
어차피 어제와 같은 걸 먹는데,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맞은 편 집에서 새어 나오는 환한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밥알이 까끌거려 국을 떴지만 국에서마저 꼬릿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묵묵히 씹히는 쌀밥에 어둠까지 함께 삼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통에 그릇을 툭 던지고 나서야 뒤늦은 한기가 스며들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쳐다보았다.
제법 굵어진 수염이 손바닥에 쓸려 수납함을 뒤져 일회용 면도기를 꺼내 들었다.
여느 때처럼 피가 흘러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샤워를 마친 뒤에도 핏방울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혈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서랍을 열었다.
한참을 뒤적여 찾아낸 것은 반으로 쪼개진 워크맨 플레이어, 형의 어릴 때 사진, 버려진 줄 알았던 내 기타 피크.
그리고 검정색 전기테이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전기테이프로 대충 상처를 감쌌다.
테이프라도 붙여서인지, 아니면 멈출 때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내 피가 잦아들었다.
침대에 눕자, 지나온 오늘이 돌연 필름처럼 천장에 펼쳐졌다.
대체 왜 웃었을까.
지나온 시간을 당겨, 그녀의 미소를 다시 떠올리려 해보지만 이미 흐릿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리 없이 거세진 빗소리가 어느 결에 창문을 두드린다.
답이 없는 질문에 이리 저리 몸을 뒤척이다 보니, 어느 순간 침대 아래의 납덩이 같은 손이 무겁도록 나를 끌어당긴다.
강제로 코드가 뽑혀 나간 기기처럼, 의식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떨쳐내지 못한 납덩이를 껴안은 몸으로 눈을 뜨니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꼭 움켜쥔 손에는 아직 기타 피크가 들려져 있었다.
현관의 신발은,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집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혼자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