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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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올

며칠 전 1호가 물었다.

“엄마, 심장이 뛰는 걸 느낀 적이 있어요? 기억이 날 만한 그런 일.”

“그럼!! 얼마 전에 임플란트 한다고 누워있는데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치과선생님한테 들릴까 싶던데?”

“ ㅎㅎㅎㅎ 아니 그런 거 말고.”

“음... 교회에서 반주하다, 특히 전주에서 틀리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요즘은 아니지만”

내가 틀리는 걸 가까이에서 듣는 1호인지라 피식 웃었다.

1호의 질문과 맞는 답은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1호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의 ‘피아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피아노가 좀 그래. 피아노에 대해서는 마음 한 구석에 좀 그런 게 있었어. 어렸을 때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거든 아마도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때가 아닐까 싶어. 근데 우리 집은 학원에 보내줄 형편이 아니었던 거 같아. 뭐 늘 가난했으니까. 피아노 ‘교습소’ 운영하는 교회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게 학원이랑은 좀 다르거든? 운영하는 자격에 차이가 있는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지만 집에 피아노 세 대를 이 방, 저 방에 놓고 가르치는 그런데였어. 거기 놀러 가서 배웠던 거 같아. 얼마동안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가 돈을 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 6학년 때인가? 또 얼마동안 다니다 말았는데 나는 피아노가 치고 싶었어.

그래서 평일에 교회에 가서 쳤어. 내가 보는 악보라고는 찬송가 정도였지 뭐. 그렇게 몇 번? 여러 번? 학교 끝나고 가서 쳤었는데 어느 날, 외할머니가 교회에 가서 피아노 치지 말라고 하더라. 교회 관리집사님이 교회 안에서 살고 계셨는데 시끄럽다고 외할머니한테 얘기했대. 울었나? 잘 생각 안 나지만 어린 나이에 당연히 상처가 되었지. 지금도 안 잊을 만큼. 그다음부터는 피아노 칠 기회도 없었고 치고 싶지도 않았어. 아니 치고 싶은데 칠 수가 없는 거지.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나한테 피아노는 좀 그래. 뭐랄까, 내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랄까. **이모 알지? 그래서 내가 **이모한테 나는 나중에 나중에 디게 좋은 피아노 가질 거라고 했었어. 전기 연결해서 쓰는 피아노 말고, 묵직한 업라이트로.”


“암튼, 그렇게 피아노와 상관없이 살다가 여기 교회 와서 반주라는 걸 하게 되었으니 너무 웃긴 거 아니냐? 칠 줄 아는 거라고는 찬송가 밖에 없는데 여기는 찬송가만 부르니까. 처음에는 미리 연습을 해도 막상 예배 때 맨날 틀렸잖아. 지금이야 몇 년 지나기도 했고, 매주 새로운 노래를 하는 게 아니니까 연습도 안 해. 그래도 틀리기도 하지만.ㅋ”

“그러네 전엔 미리 가서 연습하고 그러더니..”

“근데 언젠가 ㅇㅇ 집사님이 나더러 피아노를 언제부터 배웠냐 물으시는 거야. 그런 거 물으시면 안 되는데요 맨날 틀리잖아요 했더니 집사님이 ‘화려하지 않아서 우리 교회랑 어울려요’ 하시는데 그 말씀이 엄청 위로가 되더라고.”

“나는 기타 그냥 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작은 시골교회에 와서 반주를 하기 시작했다. 1호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엔 미리 연습을 하고도 많이 틀렸다. 여기와 첫 성탄절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치는데 어찌나 전주부터 버벅댔는지 다 끝나고 나서 “으.. 예수님이 절뚝거리며 오신 것 같아.” 했었다. 지금도 잘 치지는 않지만 처음보다 나아지긴 했다. 전에는 악보에 나와 있는 음표 누르는 것만 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코드 보고도 칠 줄 안다. 실력이 늘었다기보다 그냥 익숙해진 거겠지. 치는 나도, 듣는 교인들도.

평소에 주로 운동화를 신고, 교회 갈 때나 격식 차려야 하는 곳 갈 때만 구두를 신는데 몇 주 전 결혼식이 있어서 그날도 신을 생각 하고 있었다. 남편이 자기 구두, 내 구두 닦다 말고 묻는다.

“여보, 신발 바닥이 왜 이래?”



“응? 몰라. 언제부터 그랬지? 신을 때 몰랐는데?”

저 구두를 오래 신기는 했다. 하지만 구두 신는 일이 많지 않은데 어쩌다 저렇게까지 되었을까, 왜 나는 몰랐을까, 결혼식 다녀오는 내내 생각했다. 한참 고민한 끝에 든 생각. 혹시 피아노 페달?

오른 발만 저렇게 되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페달을 밟아봤다. 위치가 딱 저기고, 피아노의 맨 오른쪽 페달은 아주 반들반들 광이 난다. 누가 보면 피아니스트인 줄 알겠어 아주 그냥. 일주일에 딱 한 번, 그것도 한 시간 예배드리는 중 찬송가 몇 곡 부르는 동안만 밟는 페달 때문에 신발이 저렇게 되다니.

신발이 저리 되도록 피아노를 쳤다. ㅋㅋ

이제는 피아노를 생각해도 마음이 찌릿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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