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나쁜 딸이 되었다.

안 하던 짓은 계속 하지 않는 걸로

by 모래올

‘엄마에 대해 오빠도 올케언니도, 여보도 딱 그만큼이지 뭐’라는 나의 말이 남편 맘 속에 부담을 줬던 걸까.

친정엄마 계시는 근처에 (사실, 옆도시이니 그렇게 근처도 아니다) 장례식을 다녀와야 했던 남편이 엄마한테 들러 밥 한 끼 먹고 오겠다고 했다. 장모와 사위가 밥 먹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선 결혼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 혼자 친정에 가 엄마와 단 둘이 밥을 먹는다는 게 말이다. 그런 특별한 일이 하마터면 오늘 있을 뻔했다.


장례식장으로 출발 하고 얼마 지나 남편이 엄마에게 근처에 장례가 있어서 가는 데 가서 어머니와 점심 먹겠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사위가 혼자 와서 밥 먹겠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는지 엄마는 바로 내게 전화를 했다.

“이서방이 왜 혼자 온다는 거야?”

누구네 장례가 어떻게 났는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데 굳이나 엄마한테 들르겠다며 출발했다고 엄마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엄마는 자주, 본인이 말을 안 해 그렇지 얼마나 몸이 여기저기 불편한지에 대해 얘기하신다. ’솔직히, 엄마 좀 몸이 힘들어.‘로 시작하는 그 말을 엄마가 얼마나 자주 하는지 본인은 모르시는 것 같다. 그 생각의 저변에는 ’네가 뭘 알아 내가 얼마나 참아내는지 ‘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은데 엄마는 늘 때마다 감추지 않고 참지 않고 표현하신다. 오늘도 그랬다. 뭐에 대한 알레르기인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가려웠고, 잠을 못 잤다는 얘기, 그래서 약국에서 알레르기약을 사다 먹었다는 얘기를 그저께 통화하면서 했는데 새삼스럽게 그래서 잠을 못 잤다는 얘길 오늘도 생생하게 하셨다. 듣는 나는, 그게 어젯밤 일인지 3일 전 일인지 헷갈려 먹은 약이 효과가 없었느냐 물었는데도 엄만 그냥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말씀하셔서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힘들었다 하시길래 약국만 가지 마시고, 병원에 가시라 말씀드렸다.

“약국 세 번 갈 정성으로 병원에 한 번 가시는 게 더 나아요. 알맞은 약을 처방받아먹어야지, 엄마가 처방 내려 무슨 약 달라하지 말고.”

내 말이 길어졌다.

내 말이 잔소리가 되니 엄마는 듣기 싫어졌나보다.

귀를 닫으시는 게 느껴져 말이 더 길어졌다.

이따가 이서방 오면 병원에 나를 내려다오 말씀하시라 그랬다. 됐단다. 그러지 말고 병원 다녀오시라 말씀드렸다. 결론 안나는 엄마와 나의 쓸데없는 설전. 몸이 불편하고, 병원에 다녀오시라는 말이 이렇게 목소리 높여가며 오래도록 주고받을 일인가 싶은데 번번이 이렇게 되는 게 너무 지친다.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이따가 엄마랑 밥 먹고 나면 엄마 좀 병원에 내려드려. 두드러기 나서 한숨도 못 주무셨대. 그 근처 가면 엄마 다니는 병원 있을 테니 엄마 좀 거기다 내려드리고 장례식장에 가.”

당연히 남편은 알겠다고 대답했고, 나는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따가 이서방이 병원에 모셔다 드릴 거예요. 다녀오세요.”


친정집 도착 3~40분 정도 남기고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이서방 여기 오지 말고, 그냥 장례식장만 다녀가라 그래.”

“아니 왜요? 다른 일이 있어요?”

“아니, 일은 무슨 일. 그냥 여기 들러가면 돌아가는 건데 힘드니까.”

“그런 줄 알고 출발한 건데 모처럼 마음을 썼는데 왜 마다해요. 이미 가고 있는데 다른 이유가 있어요?”

“아니 굳이나 뭐. 이서방 힘드니까. 여기 들러가려면 더 오래 걸리니까.”

다시 또 얘기가 길어진다. 어쨌든 엄마가 하고 싶은 얘기는 ‘오지 마라’였고, 그만 하고 끊으라 길래 세상 냉정하게

“알았어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엄마 목소리가 한 음절 들렸던 것 같다. 엄마가 다른 말을 시작하려는데 끊었나 보다.


두 시간 정도 걸렸나? 첫 통화부터 마지막 통화까지.

끊었다 엄마가 다시 전화 걸고, 끊었다 다시 내가 전화 걸고.

화가 났고, 지쳤다.

남편에게 전화해 이러저러하니 가지 말라고 하고, 엄마와 다시 통화하고 싶지 않아서 문자를 남겼다.

“이서방 장례식장으로 바로 가라고 했어요. 점심 챙겨드세요.”



엄만, 왜 그랬을까.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장모님과 밥 먹겠다고 가고 있는 사위를 왜 돌려세웠을까?

병원에 가라 하니 가기 싫었을까?

앓는 소리 했지만 사실은 증상이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였을까?

사위가 오면 밥 한 끼 사 먹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였을까?

사위랑 둘이 밥 먹는 게 부담스러웠을까?

그 어떤 이유라 해도 내 마음이 상했다. 무척.

이게 대화야? 싶을 만큼, 나는 내 얘기를 했고 엄마는 엄마 얘기를 했다.


불편한 통화가 신경이 쓰이신 건지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퇴근했어? 이서방은 왔어?”

“네”

“모처럼 온다고 했는데”

“오지 말라 그래놓고 뭘.”

“아유.. 길게 말하지 말자.”

“엄마는 집사님이랑 병원에도 가고 일 보러도 다녀왔어.”

“네, 알았어요.”

나는 또 속으로 구시렁댄다.

‘말도 못 하게 할 걸 전화는 왜 한 거야.’


엄한 사람에게 한 마디 던진다.

“아니,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겠다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 애초에 가지 말라니까.”


그렇게 나는 또 나쁜 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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