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중순이 되면, 스위스에는 칸톤 별로 초/중/고에 1-2주씩 가을 방학이 있다. 최근에는 대학도 여름 방학을 한 주 줄이고, 가을 방학(?)을 갖는 추세라고 한다.
처음 스위스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이 그 긴 여름 방학(2달 반 가량)을 보내고 학교에 간지 얼마 되지도 않고,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 좀 할만한데, 또 방학을 하는 것에 참 신기한 교육시스템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냥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 하려는 여기 문화가 만든 것이 가을 방학이라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참고로, 2월에는 스키 방학이 1-2주가량 또 있다.
덕분에 가을이면, 아이들과 아름다운 자연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만 여겼었다.
지난주 불어학원에서 들었던 가을 방학 기원에 대한 설명 덕에, 그동안의 나의 무식함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들의 문화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대다수 현대 스위스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이 기간을 단지 휴식을 위한 기간인 "vacances d'automne"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원래는 이 기간을 "vacances des patates"라고 불렀었고, 단지 휴식과 여행을 위해서가 아닌, 방학을 했어야 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불어로는 감자를 "pomme de terre"라고 하지만, 캐나다 불어권 지역인 퀘벡에서는 감자를 여전히 "patate"라 부른다고 한다. 이미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감을 잡았을 것이다.
"vacances des patates"을 번역하면, "감자 방학"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스위스 사람들이 이 맘 때쯤 감자를 수확하기 시작하는데, 바쁜 부모들이 수확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력이 절실했던 이때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작은 손길마저 필요했기에 만든 것이 바로 "vacances des patates"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의 부유한 스위스도 불과 몇십 년 전에는 눈이 쌓여 고립되면, 유일하게 남은 먹거리였던 딱딱해진 빵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녹인 치즈를 찍어 먹었던 퐁듀가 슬픈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도 더욱더 이해가 간다.
이와 더불어, 현재 스위스 공식 국경일은 아니지만,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날(11월 1일)인, 성인의 날(All saints' day, la Toussaint)도 가을 방학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에, 수확한 감자에 대한 감사와, 그리고, 길고 긴 스위스의 겨울을 굶지 않고 보낼 수 있도록 성인들께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도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로, 스위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사과의 불어 이름도 'pomme'이다. 가을에 수확한 감자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과를 감자 사이사이에 놓게 되면, 사과는 에틸렌을 방출하여 감자의 싹이 나는 것을 늦춘다고 한다. 왜 감자를 'pomme de terre'로 사과를 'pomme'로 부르게 되었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가끔 아내의 명령에 따라서 슈퍼나 시장에서 가서 혼자 감자를 살 기회가 있다. 그러면 매번 그 다양한 색깔과 종류에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아내에게 전화를 물어봐야 한다. 어떤 감자는 라끌렛(Raclette)용, 어떤 것은 퐁듀(fondue)용, 어떤 것은 퓌레(purée)용, 어떤 것은 프리뜨(frite) 등등... 감자와 요리에 무지한 나에게 있어 감자 고르기는 너무 어렵다.
평소에는 그놈이 그 놈이겠지 하면서, 제일 보기 좋고, 큰 녀석으로 골랐지만, 우리에게도 주식인 쌀과 관련하여, 생산된 지역에 따른 미묘한 맛의 차이와 조상 때부터 전해져 오는 쌀에 대해 소중함과 특별함이 있듯이, 이들에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감자에 대해 기회가 되면 더 알아보고, 이들만이 갖은 문화에 대해서도 좀 더 배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프렌치프라이(불어로는 frites 또는 pommes frites)
프렌치프라이의 기원은 벨기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1680년대 벨기에 왈롱 지역의 주민들이 강이 얼어 낚시를 하지 못할 때 작은 물고기 모양으로 감자를 썰어 기름에 튀겨 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1차 세계 대전 중 벨기에에서 이 감자튀김을 맛본 미군 병사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했던 벨기에 사람들을 프랑스인으로 착각하며 'French Fried Potatoes'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프렌치프라이'의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 감자칩(불어로는 chips 또는 chips de pommes de terre)
감자칩은 1853년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까다로운 손님의 불평에,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심정으로 요리사 '조지 크럼'이 감자를 최대한 얇게 썰어 튀긴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얇고 바삭한 감자튀김은 이 지역의 명칭을 딴 '사라토가 칩'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것이 현대 감자칩의 시작이 되었다. '사라토가 칩'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메뉴가 되었고, 이후 감자칩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895년에는 대량 생산 공장이 생겨났고, 1910년에는 처음으로 봉지에 담긴 감자칩이 등장하여 휴대성이 높아졌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감자칩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1956년에는 기존 감자칩의 부서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 프레드릭 보어가 '말안장 모양'의 감자칩과 질소로 충전된 원통형 캔 포장을 개발했고, 이것이 현재의 '프링글스'를 탄생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 Patate가 소중한 감자를 나타내는 용어이지만, 속어로 patate는 바보 같은, 멍청이 같은, 영어의 clumsy, stupid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