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올 9월 윤석열을 로마황제 네로에 빗댄 역사 에세이( "가려 뽑은 동서양사")와 논설( "한국의 국민주권주의 과정과 과제")을 발간한 바 있다. 글쓴이는 네로의 만행과 기행이 과대망상증과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유발된 것이며, 윤석열도 매우 비슷한 증세와 행태가 있어 위 에세이를 썼던 것이다. 12.3 내란 이후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윤석열의 상태를 정확히 위 증세로 진단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그는 네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과대망상증과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더 나아가 히틀러의 확증 편향과 선동성도 엿보인다. 윤석열은 자신의 확증편향을 합리화하기 위해 습관성 거짓말과 궤변으로 일관한다. 그를 역사 인물에 비추어 보면 네로와 히틀러의 결합에 가깝다. 이번 12.3 내란도 자신의 무능과 실정으로 총선에 참패해 소수 여당이 되어 여러 정책 추진이 제한되고 몇몆 인사마저 탄핵되자 그야말로 난동을 부린 것이다. 더불어 명태균 사태로 자신과 배우자의 여러 범죄행각을 더 이상은 감추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거에 판을 뒤집고자 전 국민을 볼모로 하는 12.3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또다시 윤석열과 같은 광인의 탄생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국민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기 위해 본 글을 쓴다.
("가려 뽑은 동서양사" 중에서)
서기 68년 로마제국의 속주인 갈리아 총독 빈덱스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히스파니아 총독 갈바를 황제로 추대했다. 연이어 다른 속주의 총독들도 반란에 가세하고, 근위대마저 네로에게 등을 돌렸다. 결국 네로는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선고받자, 68년 6월 8일, 31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네로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은 “세상에서 얼마나 아까운 예술가가 나의 죽음으로 사라지는가!”였다. 네로의 죽음 이후, 약 1년 6개월 동안 로마제국은 서로 살육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4명의 군인황제(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연달아 즉위하는 대 혼란의 시대가 전개됐다. 네로가 최후 순간에 남긴 말과 같이, 그는 과대망상(誇大妄想)과 자기애성 인격장애(自己愛性人格障碍)인이다.(註) 이런 증세로 로마 제국을 14년 통치한 네로는 수많은 만행과 기행을 저질렀다. 이를 살펴보면서, 오늘날에도 네로 황제 출현과 같은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고 방비해야 한다.
註: 과대망상증은 내재적인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증세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시하며 매사 독선적이고 오만하여 남을 함부로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믿음에 집착하며 자신의 인식이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한다. 아울러 주변인들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상대가 피해를 호소하면 그것은 자기의 잘못이 아니고 상대의 탓이라고 억지를 쓴다. 자기는 항상 옳고 정의롭고 선하기 때문에 다소의 손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를 따르라고 강요한다. 자기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엄연히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착각한다.
註: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대인관계에서 남을 위할 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느껴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의 능력에 대해 비현실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무제한적인 능력, 재물, 권력, 높은 지위, 아름다움이나 이상적 사랑을 바란다. 간혹 이러한 목표가 달성된다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고 실망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내면의 충실보다 겉치장에 더 관심이 있고,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에 별 관심이 없고, 멋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판할 때는 무시하거나 분노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모독한다. 이는 무의식의 기저에 자리한 병증인 '자신이 잘나야만 한다'는 방어기제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보다 만만해 보이거나 거슬리는 상대와 오래 있게 되면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춰 비난하고 집요하게 혹사시킨다. 아울러 자신을 화나게 만들면 엄청난 열등감과 격노가 터져서 잔인하게 앙갚음하는 등 무서운 호전성을 보이게 된다.
네로(37~68)는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시작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서기 54년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급사하자(註) 당시 황후인 아그리피나(註) 주도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외동아들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그녀의 친아들인 네로가 황제로 즉위했다. 황제 즉위 후인 55년, 네로는 어머니 아그리피나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어머니가 잠재적 황위 계승자인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자신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결국 브리타니쿠스를 살해했다.
(로마제국 제5대 황제 네로의 초상화)
註: 서기 54년 10월, 로마제국의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했다. 독버섯에 중독돼 사망했다고 하지만, 4번째 아내인 네로의 친모 아그리피나에게 독살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에 따르면 아그리피나는 자신과 전 남편 사이의 아들인 네로를 로마 황제로 만들기 위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먹을 버섯 요리에 독약을 넣어 암살에 성공했다.
註: 소(小) 아그리피나는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로,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조카인 게르마니쿠스(아버지 드루수스가 티베리우스 황제 동생)와 대(大)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로마제국 3대 황제 칼리굴라의 동생이며,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의 조카이자 넷째 아내이다. 아울러 5대 황제 네로의 어머니이다.
집권 초기에 네로는 당시 최고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와 근위군단 대장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나름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로마의 신이 황제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했다는 신념으로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발전시켰다. 네로는 자신을 예술가의 지도자로 생각해 시, 노래, 건축 등 예술을 지원했는데, 지금까지도 네로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남아 있다. 네로시대 건축물 중에서도 압권은 황금궁전이라고 불리는 도무스 아우레라(註)이다. 로마가 자랑하는 원형극장 콜로세움(서기 80년경 완공)도 후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황금궁전 내에 있는 인공호수를 허물고 지었다.
註: 도무스 아우레라는 로마에 있는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이다. 서기 64년 로마의 대화재로 건조 중이던 궁전(도무스 트란시트리아)을 소실했기에 네로 황제가 새롭게 정원, 농원, 인공연못, 숲 등을 포함한 장대한 구상 하에 조성했다. 궁전의 설계는 사다리꼴의 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 서쪽은 넓은 구형의 중간뜰을 따라 방이 배치되고, 동쪽은 중앙의 돔이 달린 8각의 광장이 있으며 주위에 5개의 방이 방사선 상태로 줄지어져 있는 참신한 구조이다. 현존하는 것은 폐허 밑에 매몰된 어두운 방뿐이며,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많은 벽화는 15세기에 발견돼, 라파엘 등 많은 르네상스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황금궁전 유적지를 계속 발굴하고 있다.
네로는 55년 잠재적 황제 계승자인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했고, 59년에는 정치적으로 심하게 간섭하고, 권력 행사에 방해되는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했다. 아울러 65년에는 스승인 세네카에게도 자살 명령을 내렸다. 네로는 이 같은 패륜적 살인 행각과 더불어 그가 폭군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은 64년 기름창고 사고가 원인이 돼 발생한 로마 대화재 때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당시 로마제국의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워 기독교도를 학살한 일이 결정적이다. 이처럼 기독교도를 무참하게 학살한 네로는 로마제국 황제 중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로 기록됐다.
네로의 과대망상과 자기애성 인격장애에 따라 저지른 만행과 기행은 수없다. 그의 기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67년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것과 그리스 순회공연에서 1808회나 우승한 것이다. 네로는 그리스 올림픽에 이전에 없던 하프 연주와 비극 연기를 종목에 넣어 둘 다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차 경주에서는 경기 도중 전차가 넘어져 실제는 꼴찌지만 전차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일등이라는 억지 해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고, 소식을 빨리 전하는 전령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아울러 약 15개월에 걸친 그리스 순회공연에서도 1808개의 우승 트로피를 독식했으며, 이때 그리스인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환영회와 호평(실제는 아첨에 불과)에 크게 만족해하며 그리스인들의 염원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 속주 총독으로부터 그리스를 해방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선물로 하사했다. 이는 네로의 과대망상과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빗어낸 한 편의 코미디인 것이다.
동서양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네로의 과대망상과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만행과 기행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최고 권력자는 모든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의 시발점은 가장 낮은 국민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매사에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권력자는 국민을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에서 배워야 할 반면교사의 교훈이다.
("한국의 국민주권주의 과정과 과제" 중)
글쓴이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탄생부터 세계 각국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너무도 흥미로워 지금껏 오거서( 五車書)의 역사서를 탐독했다.(註) 이에 글쓴이가 전 세계의 역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만큼 놀라운 저력과 성과를 보인 국가와 민족은 거의 없다. 즉 우리나라는 불과 50여 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기적과 같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註), 국내외 수많은 경제, 역사학자들에게 찬사와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은 어떠한가. 온갖 기괴한 일들이 속출하고 계층, 이념 간 갈등으로 그동안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붕괴될지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현시점에서 이러한 현상과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생략한다. 다만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절대 권력은 어김없이 부패하고 타락했다. 현행 우리나라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에 절대 권한은 온갖 불공정과 비리의 주범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또한 사법부도 국민주권에 기반한 사법민주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차제에 우리나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완하고, 일부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해서 공직자의 권한 남용과 비리를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 아울러 정권의 주구(走狗)가 되다시피 한 검찰을 완전히 해체하는 수준의 개혁을 하고, 사법부도 국민들이 재판 결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註) 글쓴이는 최근 "가려 뽑은 동서양사"라는 제목으로 10개국(한국, 중국, 일본,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잉카, 로마사)에 대한 13편의 역사 에세이를 브런치북으로 발간했다.
(註)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은 실질 GDP(국내 총생산)가 1조 8,394억 달러로 세계 12위이고, 1인당 GNI는 일본을 추월해 세계 28위이다(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로는 1위 미국 74,320, 2위 독일 59,980, 3위 영국 51,460, 4위 프랑스 52,110, 5위 이탈리아 38,182, 6위 한국 36,194, 7위 일본 35,793달러). 세계은행과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1960년 한국의 실질 1인당 GNI는 1,175달러로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약 30배 성장이라는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단 일부 매체 등에서 언급하는 한국의 1960년 1인당 GNI 79달러는 명목 GNI이며, 현재 한국은행 통계 기준연도인 2020년까지 물가상승을 감안한 구매력 기준의 1인당 실질 GNI는 1,175달러이다. 따라서 일부 매체 등에서 한국의 1인당 GNI가 60여 년만에 458배 성장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통계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