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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항 Apr 26. 2022

왓치맨(앨런 무어, 데이브 깁슨스)-추가 리뷰

2. 감상 추가 

  이 작품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얼핏 보면 만화처럼 보이지만, 대사의 양이 상당히 많고 중간중간에 짤막한 소설 형식의 서술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화와 (삽화가 들어간) 소설의 중간 형태라고 보시면 되실 텐데요. 이 작품 그림부터 상당히 고퀄입니다. 풀컬러라는 점도 그렇고 극사실적인 묘사, 생생한 인물의 표정,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얼룩이 묻은 스마일 마크의 수미상관 등 상당히 공들인 수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최종 빌런이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지켜야 할 대상인 동시에 막아내야 할 존재인 것이죠. 의미 없는 폭력과 전을 일삼는 인간. 그렇기에 희생은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빌런을 퇴치하기 위해 인류의 얼마만큼을 도려내야 할 것인가를 가지고 끊임없이 갈등하는 스토리입니다. 요즘에는 사실 이러한 설정의 이야기들이 적지 않죠. 어딘가 다크 나이트와 시빌 워가 합해진 듯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왓치맨 1980년대 중후반에 연재작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안티 히어로 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왓치맨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강한 장점은 캐릭터에 있다고 봅니다. 이 작품의 주요 갈등은 각 히어로들의 내면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히어로들 간의 갈등입니다.     

  코미디언 먼저 보시면, 그는 현직 시절 상당히 능력 있는 히어로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히어로들의 활동을 금지시킨 킨 법령 제정 이후로도 특수부대 요원으로서 미국 정의를 위해 활동합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히어로죠.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그는 어떻습니까? 동료에게 가차 없이 물리적 폭력과 성폭행을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에게 주저 없이 총을 쏘아버리죠. 그 이후의 태도나 행동들을 보아도 기본적 윤리의식이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인물임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궁금하더라고요. 오지맨디아스가 그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그는 뉴욕 침공 계획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요? 그는 이 계획을 ‘조크’와 같다고 표현했죠. 있을 수 없는 일. 말도 안 되는 조크라고요. 그가 오지맨디아스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점을 볼 때 최소한 오지맨디아스만큼은 코미디언이 자신의 계획에 찬동하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국가의 영웅’이자 동시에 ‘인간쓰레기’이기도 한 그가 과연 이 딜레마에 대해서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실크 스펙터와 나이트 아울 같은 경우, 히어로 일을 단순히 직업적 태도로만 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전성기 때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만, 은퇴 후의 그들은 딱히 히어로에 대한 미련이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나이트 아울은 어떤 상황에서든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조용히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동료의 술자리 제안을 거절하는 데도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로리에 대한 마음을 쉽게 고백하지도 못하는 인물이죠. 인간적으로는 친구가 많고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일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성격으로 어떻게 히어로 일을 해왔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실크 스펙터는 은퇴 후의 삶을 오히려 더 즐기는 것 같습니다. 십 대 시절부터 히어로 생활을 접하고 살았기 때문인지, 열심히 살면서도 뭔가 지쳐있었던 것 같고...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겪고 데뷔한 뒤 화려한 활동을 해오다가 때가 되자 미련 없이 은퇴해서 살아가는 아이돌 같은 느낌이에요. 1세대 히로인이었던 어머니의 삶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세상이 위기에 처하자, 이 둘은 의외로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대목에서 이타적이거나 숭고한 동기가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히어로가 됩니다. 가면과 슈트를 벗은 그들은 민간인과 다를 바 없죠. 피곤한 인간관계와 범죄, 전쟁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요. 매사에 의욕이 없고, 연인과 사랑을 하는 일조차 잘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해서 불안을 ‘컨트롤’하는 것이 자신들의 안녕과 행복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움직입니다. 한번 엔돌핀을 맛본 이들의 질주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상대를 만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힘으로도 맞설 수 없고, 윤리적으로도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조차 없는 상황.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버리죠.     


  닥터 맨해튼이란 이름의 유래는 맨해튼 프로젝트였다고 하는데요. 그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인류는 사랑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가 아닐까 싶네요(CSI 길 그리섬 반장님의 유명한 대사라죠.). 정확히 닥터 맨해튼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흥미 정도는 느끼고요. 나름 존속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비합리적이고 타락하고 나약한 인간들 각자의 삶에도 나름의 향기가 있다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어쩌면 연구 대상인 흰 개미떼일 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실상 현존하는 신과 같습니다. 미국을 위해서 일하는 신이죠. 이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단정하기 애매합니다. 우리가 늘 구하며 찾아왔던 전능한 존재가 우리와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죠. 그와 직접 대화를 할 수도 있고, 뉴스를 통해 그가 어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대통령에게 립서비스도 하지만, 인간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는 않죠. 책에 있는 표현을 인용하면 그저 인간은 “모두 맨해튼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것”일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음이 확실한 전능한 존재와 공존하는 삶. 닥터 맨해튼은 어쩌면 신에 대한 인간의 의심과 불만이 농축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신, 혹은 인간을 사랑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는 신. 

  그런데 이게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며 연금술에 가까운 기적을 발휘하는 거대한 존재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신의 입장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요. ‘사랑’이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상당히 설득력 있는 신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로어셰크는... 참 아픈 캐릭터인데요. 본인도 아프고, 보는 사람도 아프고, 휴우...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한 인물이죠. 코미디언의 강함을 동경하며, 그 자신도 가면을 쓰면 강해진다고 믿습니다. 코미디언이 저지른 만행들은 그의 업적에 묻혀 작은 일이라고 치부하죠. 사실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약한 어린아이들에게 살육을 서슴지 않았던 코미디언인데 말입니다. 이점은 히어로로서는 의외의 면이지만, 어찌 보면 인간이 가진 보편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무자비한 인간이 되더라도 강해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고요.

  거칠고, 미숙하고, 흠이 많은 인물입니다. 약자의 입장에 더 가깝죠.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는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것이 없고, 외모 또한 호감을 주는 편은 아닌 듯합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요령도 없습니다.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며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와 조차 오랜 관계를 쌓아가지 못하고요.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의 진 주인공이 맞습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은 인간입니다. 대의가 무엇인지, 인류가 어떻게 될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부당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거죠. “아팠지? 괴로웠지?”라고요(가마도 탄지로의 특허급 대사죠). 

  특히 그는 어린아이에 대한 범죄에는 절대 자비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교도소에서 탈옥한 직후, 인터뷰에서 자신을 모함한 여성을 만났을 때, 그의 눈빛에 어린것은 그녀에 대한 분노보다 겁에 질린 그녀의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었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에 충분한 힘과 나름의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상처를 걱정하여 돌아선 것은 진정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최후의 장면은 또 어떤가요. 세계 최강의 두 사람, 닥터 맨해튼과 오지맨디아스를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러한 희생을 묵과할 수 없다며 울부짖으며 죽음을 맞이하던 모습. 이건 진짜 용기죠. 저는 상술한 두 장면에서 로어셰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가면을 쓰지 않아도 그는 진짜 히어로였습니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도 맥을 같이하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한가?”와 같은 딜레마에 대한 로어셰크의 해답이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히어로 가면에 숨지 않은 채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진짜 용기를 드러냈습니다. 히어로의 조건에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왓치맨은 재미있습니다. 서사는 치밀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스릴이 있으며, 반전과 충격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습니다.

  결국 닥터 맨해튼의 마음을 돌린 것은 인간의 탄생 자체가 기적이었다는 점이지만, 사실 그 기적 속에는 인간의 탄생을 가능케 만든 사랑 존재하고 있죠. 코미디언과 1세대 실크 스펙터와의 관계가 진짜로 사랑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요. 히어로로서의 각성으로도 잠재우지 못했던 실크 스펙터와 나이트 아울의 불안을 진정시킨 것도 사랑이죠. 그리고 그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닥터 맨해튼의 애정. 형태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로리를 사랑한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로어셰크의 사랑. 자신을 학대하고 무시한 뉴욕 뒷골목을 그는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비록 그가 틀렸을지 몰라도,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맨얼굴의 히어로가 보여준 인간을 향한 애정이야말로 이 작품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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