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깊은 늪을 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점차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도 듭니다.
이쯤 되면 그간 제가 살아온 과정이 진정 어떠한 것이었는지조차 구분되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만큼 백 퍼센트의 신뢰를 주는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늘 그랬습니다.
물을 긷는 장면, 신발을 벗는 모습, 다급하게 뛰어 올라가는 장면들은
오래전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을 보던 때와 같은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영화 속의 은유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저에게는 ‘잘해보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담담히 감내하는 모습이 남았습니다.
세상이 끝나더라도 인생은 이어집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로 상처받고,
더 깊은 상처를 받은 다른 이들을 구하지도 못하죠.
이러한 한계를 극복도 하고, 수용도 하면서 우리는 그저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갑의 위치에 올라서 갑질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의 무능과 오만, 어리석음으로
아무리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나름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저의 모습과,
결국 뒤로 고꾸라져 만신창이가 된 저의 모습.
마치 진자처럼 그 사이를 흔들리다 보면,
늪인지 땅인지 모를 어느 지점에 자리를 잡겠죠.
그렇게 흔들거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자전적 경험을 묵묵히, 아름답게 털어놓은 끝에 던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질문은,
그래도 견뎌낼 수 있다고 —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