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설렘
영화는 어두운 화면 속에 울리는 벨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엄마의 장기 출장으로 인해 혼자 집에 머물고 있던 테라는 “헬로~”로 시작되는 수상쩍은 전화를 받습니다. 당연히 전화를 건 자는 고스트페이스로 얼굴을 가린 사이코패스 살인마이고요. 비교적 오랜 시간 통화를 이어가던 태라는 집안으로 침입한 살인자의 습격을 받아서 난도질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참으로 스크림 답죠? 네. 이 영화는 스크림다운 스크림을 다시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대사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스크림 1편의 리퀄임을 드러냅니다. 리퀄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서 찾아봤는데, 아마 특정 영화의 분위기, 테마는 그대로 이어가되, 스토리를 다르게 함으로써 과거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과 희열을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영화 기법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바바둑, 겟 아웃, 유전 등, 현재 유행하는 하이컨셉호러(공포감뿐만 아니라 절망, 비애, 자조 등 다양함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 영화만 보는 Z세대들에게 정통적인 추리 슬래셔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만들어진 느낌입니다. 이해가 가실까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열광하던 어떤 것, 사람이든 물건이든 문화든, 그 어떤 것이든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요즘 핫한 트렌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보지도 않고 폄하될 때의 느낌. 그래서 그들에게 기어코 내가 좋아하는 것의 진가를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 백 프로 공감됩니다. 전 하이컨셉 호러도 무척 좋아하지만, 슬래셔는 무척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 보죠. 장면은 전환되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태라의 언니 샘은 태라의 습격 소식을 듣게 되고, 남친 리치와 함께 태라를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향합니다.
태라의 고향은 스크림 시리즈의 연쇄살인이 벌어졌던 우즈보로. 역시 하이틴 슬래셔답게 태라의 친구들이 모여서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 범인도 있겠죠. 일단 태라의 친구 그룹이자 용의자 집단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지역 보안관의 아들이자 태라의 썸남 웨스(남), 태라의 절친인 엠버(여), 그리고 스크림 1편에서 공포영화의 법칙을 언급하던 랜디를 기억하시나요? 이 랜디의 쌍둥이 조카 민디(여)와 채드(남), 채드의 썸녀 리브와 리브를 스토킹 하는 부랑아 빈스(남). 이 빈스는 스크림 1의 공범 스튜와 무슨 혈연관계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조카였었나.. 기억이 불분명하네요.
아무튼 이들은 다행히도 태라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샘과 리치 커플을 만나게 되죠.
뭔가 어색한 분위기의 만남. 사실 샘에게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연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샘의 친부가 스크림 1의 범인 빌리 루미스라는 것입니다. 샘이 어릴 때,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자신이 현재 부친의 딸이 아닌,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의 딸임을 알게 됩니다.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집을 나가게 되고, 샘 역시 마약이나 사소한 범죄에 손을 대며 한동안 방황을 하다 18살이 되어서 집을 떠나버리게 된 거죠.
태라는 샘이 떠나버린 것을 원망하며 그리워해 왔지만 샘은 무엇 때문인지 빌리 루미스의 환상을 계속 보고 있으며, 그런 자신이 언젠가 태라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태라에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부랑아 빈스가 고스트 페이스에게 살해당하게 되고, 범인은 부지런하게도 병원으로 가서 샘을 습격합니다. 빈스가 살해된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은데, 아마 1편의 범인 중 하나였던 스튜와의 혈연관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치안 수준으로는 태라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샘은 스크림의 영원한 히어로 듀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데요. 이미 보안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게일과도 헤어져 하루하루 그냥 버텨가던 듀이. 그를 이 지긋지긋한 사건에 다시 끼어들게 만든 치트키 한마디는 “내가 빌리 루미스의 딸이다.”입니다.
스크림에 나오는 슬래셔 영화의 법칙을 몸소 깨닫고 있던 듀이는 스크림 1편의 사건을 참고하여 태라의 친구 무리를 의심하게 되고, 타 지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시드니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안 된다.”라고 경고를 합니다. 여전히 다정한 듀이네요. 그리고 등장한 시드니는 역시 매력적인 데다가, 눈빛은 더 깊어졌더군요. 저는 이 부분에서 시드니의 등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부분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샘은 태라의 친구 무리를 만나 자신이 빌리의 딸임을 밝히며 “범인은 이 안에 있다.”를 시전 하지만, 애초에 스크림에서 슬래셔의 법칙을 주창했던 랜디의 조카 민디는 이 상황이 스크림 1의 리퀄인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샘이야말로 범인에 딱 적합하다.”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샘. 거기다가 친부인 빌리의 환각이 나타나 본성을 숨기지 말고 죽이고 싶은 상대의 목을 그어버리라는 패륜적인 충고까지 해서 더욱 샘을 힘들게 하죠.
일단 이 부분에서 살인범의 동기를 추리하던 민디는 재미있는 말을 하는데요. 하이컨셉호러가 대세가 된 지금, 범인은 당시의 클래식한 추리 슬래셔의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사건을 저지른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죠. 여기에서 좀 혼돈이 오실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일단 영화와 메타픽션의 중간에 위치한 듯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영화의 등장인물이라고까지는 여기지 않지만, 스스로가 영화의 소재거리가 되는 사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맨디가 한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영화의 가치를 역설하는 도중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면서 공포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라는 식의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이 이후로도 영화는 계속해서 말하죠. 이런 첫사랑과 같은 공포영화의 정석은 바로 스크림 1편의 사건이 유일하다고 말입니다. 이 부분은 공포영화 팬분들 상당수가 공감하실 수 있는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스토리 소개를 다 마친 뒤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한편 우리의 바지런한 살인마는 모든 경찰이 경계를 최대한 강화하고 있는 와중에 과감하게도 보안관 힉스 모자, 즉 태라의 썸남인 웨스와 그의 모친을 살해합니다. 이들을 살해한 이유 또한 명확하지 않은데, 아마 웨스의 모친인 힉스가 스크림 전작에도 등장했던 인물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과연 이러한 이유로 감히 경찰을 살해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이 부분 또한 이 영화의 아쉬운 단점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보안관 모자 살인사건은 영화에서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일단 공권력에 대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은 매스컴의 관심을 크게 받게 되며 당연히 이로 인해 우리의 히로인 게일 웨더스가 다시 등장토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먼 친척이나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코트니 콕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핫한 매력은 여전하더군요. 듀이와 잠시 애틋한 만남을 가지는 게일. 서로에 대한 감정과 미련은 여전하지만 생활 방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해 헤어진 이 커플은 실제 코트니 콕스와 데이빗 아퀘트의 관계를 보는 듯하여 더 재미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보안관 살인사건의 또 다른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마을 고등학생들이 거의 전부 모여서 웨스의 추모행사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추모행사라고 해도 그다지 경건하지는 않고요. 술 마시고 춤추고.. 거의 무슨 파티이었습니다만, 채드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웨스를 위하여”를 외치며 건배를 하죠. 이건 아마 고인이 되신 스크림의 창조주 웨스 크레이븐을 추모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웨스 크레이븐이라는 거장에 대한 팬심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고스트페이스는 병원에 입원한 태라를 습격합니다. 보안관 살인사건으로 인해 경찰 인력은 죄다 그쪽으로 집결한 상황에서 샘의 지원군은 남친인 리치와 우리의 듀이. 그러나 고스트페이스와의 혈투를 벌이다가 듀이가 살해당하고 맙니다. 아아 나쁜 살인마. 어떻게 듀이를 죽일 수가 있는 걸까요. 스크림 시리즈의 견인차인 듀이를...ㅜㅜ 감독님 미워지네요.
듀이가 죽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원래 저는 주인공을 돕기 위해 선량한 다른 시민이 사망하는 설정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이 영화는 의외로 듀이의 죽음을 그냥 다른 인물들의 살해 장면처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느낌이 있습니다. 아아... 스크림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 엔드게임의 아이언맨이나 로건에서의 울버린의 죽음처럼 좀 더 경건한 묘사가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더군요.
아무튼 듀이의 죽음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우리의 찐 히로인 시드니가 살인마와 담판을 짓기 위해 드디어 마을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 샘은 함께 살인마를 찾아내자는 시드니와 게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동생과 이 마을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하아 참,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참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태라와 함께 리치의 차를 타고 떠나는 샘. 그러나 태라의 천식 환자용 호흡기가 보이 지를 않고, 다시 범행 현장인 병원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던 이들은 여분의 호흡기를 보관하고 있는 정친 엠버의 집으로 향합니다.
엠버의 집에서는 웨스를 위한 추모 파티가 한창이었고, 당연히 파티에도 참석한 고스트페이스는 채드와 민디, 리브를 공격합니다. 자 그럼 친구 그룹의 멤버 중 습격당한 사람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딱 한 사람이 남네요. 네. 범인은 바로 태라의 절친 엠버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엠버의 집에 도착한 샘과 리치, 태라. 그리고 그들을 뒤쫓아 온 시드니와 게일.
사실 엠버가 사는 집은 스크림 1편의 그 참극이 일어난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시드니와 게일은 엠버를 의심합니다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엠버는 총으로 게일을 쏴버리죠. 자신은 괜찮으니 듀이를 위해 살인마를 잡아달라는 게일. 시드니는 듀이와 게일을 위해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저택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그러나 저택 안에는 또 다른 살인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는 엠버와 공범 관계인 리치였습니다. 사실 리치와 엠버는 스크림 1편 사건의 열렬한 팬으로서, 다시금 그와 비슷한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영화의 소재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사건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신 나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리가 없는 시드니. 결국 최종국면은 시드니, 샘, 태라, 게일 대 사이코 콤비 리치와 엠버의 혈투로 진행됩니다. 서로 총을 쏘고, 찔리고, 찌른 데 또 찌르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최종 승리자는 시드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사실 이런 게 스크림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반전 영화들이 난무한 가운데, 스크림은 굳건히 주인공을 끝까지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토록 잔혹한 살인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관객들은 마음 편히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샘은 자신의 부친이 그토록 물려주고 싶어 했던 살인 본능을 살인마 리치를 물리치는 데 사용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 사실은 샘이 이중인격 살인마였다.. 는 결말로 끝나는 영화들도 많을 텐데요. 이 영화는 빌리의 환각을 이 이상 활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떡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통 추리 슬래셔 영화인 스크림은 결코 그런 류의 주인공 빌런 반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샘은 결국 살인자의 딸이라는 숙명을 잘 이겨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스크림은 슬래셔 영화들 중에서 좀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보통의 슬래셔 영화 시리즈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등장인물이 다 바뀌더라도 카리스마 넘치는 살인마는 계속 등장하거나(할로윈,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다음으로 살인마는 계속 바뀌지만 난장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계속 등장하거나(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컬렉션 시리즈), 끝으로 살인마와 생존자 모두 교체되지만 특정 장소나 상황이 공유되는 경우(데스티네이션, 데드 캠프)죠.
스크림은 생존자가 계속 등장해서 연쇄살인을 해결한다는 설정으로 앞서 언급한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지만, 고스트 페이스라는 가면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살인마와 생존자가 동시에 함께 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죠. 그만큼 그들의 등장으로 인한 반가움도 두 배가 되는 것이고요.
네. 스크림은 저 같은 공포영화 팬에게는 첫사랑과 같은 영화입니다. 민디의 말이 맞습니다. 그냥 이 영화가 재미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전화벨 소리와 함께 들리는 헬로 시드니~ 이 대사는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반갑고 보고 싶은 것입니다.
영화는 참 재미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뒤끝이 찜찜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영화를 통해서 현실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여운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른바 하이컨셉 호러가 더 잘 맞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만한 롤러코스터가 없죠.
2000년에 개봉한 “컷”이라는 슬래셔 영화를 보면 공포영화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포 영화는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불안이나 우울을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요. 즉 가면 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마주한 극강의 공포 앞에서는, ‘기말 시험을 망쳤으면 어쩌지?’, ‘짝남이 내 고백을 거절하면 어쩌지?’ 같은 현실적 고민은 그야말로 먼지처럼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되므로, 우리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데 된다는 논리입니다.
스크림과 같은 류의 슬래셔 영화는 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안성맞춤인 영화입니다. 어떤 연쇄살인범이 저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갖추고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가, 경찰을 맨날 무얼 하고 있다가 사건이 다 해결된 후에야 나타나는가, 주인공은 왜 난간에서 떨어지고 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가... 와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들은 영화의 개연성을 다소 낮춤으로써 오히려 연쇄살인자의 칼날에서 비롯된 공포를 심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범위”의 재미거리로 만들어버립니다.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호러극. 이는 하이컨셉호러나 사회성 짙은 호러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눈에 띄는 몇몇 단점이 존재하는데, 우선 범행의 현실성이 좀....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류의 슬래셔는 적당히 개연성을 무시해 주는 것이 더 재미있는 요인이 됩니다만, 일반인 남성과 평범한 여고생이 단지 영화의 소재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경찰까지 살해한다는 설정은 “추리” 슬래셔로서의 본분에서 다소 어긋나 있는 듯합니다(추리 슬래셔는 영화 속에서 민디가 직접 이 영화의 장르로서 언급한 단어입니다.).
영화의 캐릭터 대부분은 고스트페이스로부터 습격을 당합니다만, 그중에서 실제로 살해된 사람은 건달 미 넘치는 빈스, 보안관 힉스와 그녀의 아들 웨스, 리브, 그리고 전직 경찰 듀이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태라, 샘, 민디와 채드, 시드니와 게일인데요. 시드니와 게일은 불사신이라고 쳐도 딱 봤을 때 사실상 살해하기 힘든 사람들. 건장한 체격에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 능력을 가진 인물들은 쉽게 살해하고, 일반 고등학생들은 살해에 실패합니다. 특히 경찰을 살해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체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인데, 일개 고등학생인 엠버가 혼자 전직 경찰 출신의 듀이를 너무나 손쉽게 제압해버린다는 것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 같네요. 이를테면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 같은 것을 보아도 이런 부분은 많이 나오잖아요.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내가 어떻게 나보다 크고 강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라고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말이죠. 그럼 김전일은 어떤 트릭을 써서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거기서 독자들은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추리물에서 범인을 색출하는 데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동기와 기회죠. 물론 요즘은 과학수사대가 출동해서 미량 증거물부터 추출해내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범행 동기와 알리바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 내에서 밤인들의 동기는 미약하고 알리바이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좀 더 연성을 갖춤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범인이 드러났을 때 아차~ 하는 마음이 들도록 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두 번째 단점은 오프닝 부분을 너무 오래 끌었다는 점입니다. 스크림의 시그니처인 전화벨로부터 시작되는 살해 시퀀스는 무척 좋았습니다. 다만 통화를 너무 길게 하는 바람에 익명의 전화로부터 느껴지는 긴장감이 느슨해졌다는 게 아쉬웠죠. 어차피 보는 사람은 그 전화가 일반적인 전화가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고, 곧이어 고스트페이스가 칼을 들고 습격할 것이라는 걸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통화를 끌어봐야 딱히 놀랄만한 반전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통화 자체도 하이컨셉 호러에 대한 설명 부분을 빼고는 딱히 의미 있는 내용도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스크림 1편의 오프닝 살해 시퀀스가 세기의 명장면이 된 이유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화를 받은 드류 베리모어가 잔혹하게 살해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살해 씬 때문에 스크림에서 등장하는 벨소리는 단순한 전화 벨소리가 아니라 죽음의 벨소리가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벨소리 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이토록 떨리게 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통화는 불필요하게 긴 반면, 막상 태라는 살해당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스스로 스크림의 그 유명한 전화 벨소리의 스릴감을 떨어뜨려버린 실책을 범한 것입니다. 단지 태라를 부상 입히기 위해서 굳이 이처럼 번거로운 통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듀이의 죽음과 맞바꿔진 새로운 캐릭터가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제 스크림도 서서히 세대교체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코트니 콕스가 이혼한 전 남편과 계속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서로 부담스러웠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리즈를 이끌어나가던 삼인방 중 한 명인 듀이가 장렬하게 하차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살아남은 이들도 있죠. 특히 샘은 빌리 루미스의 딸이라는 강력한 치트키를 가진 인물로서 앞으로 시리즈의 견인차가 될 인물로 보입니다만,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라 과연 듀이와 맞바꿀만한 매력이 있는지는 의문이 드네요.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왜? 도대체 왜 영화의 초반부에 시드니와 듀이의 통화 장면을 굳이 보여줬을까 하는 부분인데요. 시드니는 스크림의 상징입니다. 고스트페이스의 명대사도 그냥 “헬로-”가 아니라 “헬로, 시드니-”로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영화를 검색해보면 등장인물에 니브 캠벨이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시드니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등장하는 시점은 관객들이 새로운 주인공인 샘과 좀 더 친해진 후에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삼 파이 더맨 등장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타워즈 로그 원에서 다스베이더가 광선검과 함께 등장한 부분이 명장면인 이유는 또 무엇이고요? 스크림에서 시드니의 등장은 그만큼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녀가 병원으로 걸어올 때 스크림의 팬들에게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벅찬 감독과 희열이 솟구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시드니의 등장을 맛보기로 보여줌으로써 일찌감치 김을 빼버렸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관객이 아직 샘에게 익숙하지 않은 타이밍이라는 점인데요. 어딘지 갤 가돗을 닮은 듯한 샘이 슈퍼 파워를 발휘해서 살인마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기도 전에 시드니가 본 무대에 서려고 워밍업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관객 입장에는 당연히 시드니의 등장 이후가 본 게임이며, 샘은 당연히 영화의 찐 히로인인 시드니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주인공 역할을 대신해주는 인물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샘은 시드니에 비하면 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어릴 적 불량소녀였다는 컨셉을 살린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도 배짱도 기대보다 약했습니다. 듀이의 죽음 후는 어떤가요? 듀이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자신은 범인을 잡을 생각은 없다며 미련 없이 동생과 도망을 치죠. 빌리 루미스의 딸이라는 설정은 그럴듯하지만, 본인이 그것을 밝히지만 않는다면 빌리 루미스를 닮은 구석도 전혀 없습니다.
스크림 시리즈는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까요? 개인적으로 니브 캠벨이 액션 연기를 할 수 있는 한 계속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술한 몇 가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림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헬로 시드니-”라는 변조된 목소리는 듣는 순간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마음을 움켜잡습니다. 제가 기대하던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첫사랑을 만난 기분은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이후에 아무리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첫사랑만이 가지는 특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