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진정 마음을 불태웠습니다.
이달 21일, 더빙판 재개봉을 앞뒀는데요.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리뷰를 보지 마심을 매우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스포 아주 많습니다.
유명한 작품이죠. 원작 만화도 유명하고, 애니는 더 유명하고요. 단권 판매량 부수로 일본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이 애니 무한 열차 편은 센과 치히로를 누르고 역대 일본 애니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죠. 원작 만화도 워낙에 명작이지만, 이 애니의 메가 히트로 원작 만화에 대한 인기가 더 치솟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장 네이버 평점만 봐도 디즈니와 지브리의 내로라하는 애니들 보다 높죠. 그런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정말 오랜만에 명작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약 3분의 1 쯤에 해당하는 부분을 뽑아서 극장판으로 제작한 것으로 이 앞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상냥하고 순박한 소년 탄지로입니다. 어느 날 일을 하고 귀가하자 가족들이 모두 오니(도깨비)에게 살해당하고 여동생 혼자 겨우 살아남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 오니는 흡혈귀와 여러모로 비슷한 특성을 가져서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아가지만, 행여 오니의 피가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도 오니가 되어버립니다.
가족이 몰살당한 것도 슬픈데 동생마저 오니가 되어버린 상황. 그러나 다행히 여동생은 다른 오니와는 다르게 식인 욕구를 가족애로 극복하고 오빠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탄지로는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오니들의 생존 비밀을 밝혀내고자 귀살대라는 조직에 지원하게 됩니다. 귀살대는 오니들을 섬멸하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조직으로 저스티스리그 비슷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귀멸의 칼날은 혹독한 훈련 끝에 귀살대가 된 탄지로와 그의 동료들의 모험과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극장판으로 돌아가서, 극장판 애니는 열차에서 사람들이 자꾸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조사하기 위해 탄지로 일행과 귀살대 최고의 엘리트 중 하나인 렌고쿠(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입니다.)가 무한 열차에 탑승하면서 시작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열차 안에서 캐릭터들의 성격 특성들을 보여줍니다. 차분한 탄지로, 겁 많은 개그캐 젠이츠, 거친 개그캐 이노스케, 그리고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는 직설적이며 호탕하고 정의로운 렌고쿠.
열차 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미 오니들에게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조무래기 오니를 물리칩니다만 갑자기 승객들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원흉은 최면을 사용하는 오니가 승객들을 모두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후 서서히 잡아먹으려는 계획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부 승객들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오니의 편에서 그를 돕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탄지로는 꿈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들을 만나지만,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꿈속에서의 탄지로는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온갖 잔혹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현실을 모른 척하면, 탄지로는 계속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탄지로는 “나도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과감하게 꿈속의 자신을 베어버립니다. 오니의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꿈속의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현실의 자신을 택한 탄지로는 열차 안의 오니와 격렬하게 혈전을 벌입니다. 오니는 계속 꿈으로 탄지로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때로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건드려가며. 그때마다 다시 깨어나는 탄지로를 보며 오니는 놀라워합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베어내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해내고 있다.’면서 말이죠.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을 살아가자. 이 글의 말미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이 애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가짜로 꾸며낸 아름다운 꿈이 아닌, 비참하고 괴로운 현실을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인 인간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이 꿈을 조정하는 오니와의 싸움씬은 참으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계속 달려드는 탄지로와 그를 곧바로 다시 잠에 빠뜨리는 오니. 나중에는 꿈과 현실을 즉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며 혼란에 빠져 현실의 자신을 베어낼 뻔한 탄지로. 그런 그를 가까스로 구해내는 동료.
혹자는 성장형 소년만화 특유의 뻔한 스토리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뻔한 액션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승자가 탄지로라 하더라도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 상당한 스릴과 나름의 작은 반전들이 있습니다.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난 탄지로의 동료들과 렌고쿠, 탄지로의 혈귀 동생 네즈코는 열차와 일체화된 오니와 대혈투를 벌이고 결국 오니는 소멸시키는 과정에서 열차는 탈선하지만 200명의 승객 중 단 한 사람도 사망하지 않고 무사히 사건을 수습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전반부 액션이 끝이 납니다.
네. 전반부입니다. 이 과정까지만 해도 대단하지만, 사실 이 애니의 본 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거든요.
아마 귀멸의 칼날 캐릭터들 중 귀살대와 오니 양측에서 인기 최정상이지 않을까 싶은 두 캐릭터, 렌고쿠와 아카자의 일대 일 대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렌고쿠는 범상치 않은 외모에 단순한 성격. 적당한 개그감. 그리고 (이건 약간의 반전 매력인데), 빠르고 정확한 상황 판단력을 갖춘 인물입니다. 쿨하고 핫한 느낌을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라 매력을 단순하게 규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아카자는 대장을 제외하면 넘버 3에 해당하는 상위권 오니로써, 역시 독특하고 준수한 외모에 기구한 사연을 지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죠.
열차에서의 전투가 다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던 쯤에 강한 살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아카자. 등장 씬부터 미쳤습니다. 브금도 브금이지만 어두운 데 반짝하는 붉은 눈빛 밀림에서 흑표범이나 아나콘다 같은 맹수를 만난 것 같은 치명적인 느낌을 줍니다. 대강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들어오는 공격. 가까스로 그의 팔을 잘라서 막아내지만, 이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곧바로 팔을 회복시키는 아카자.
만나자마자 자기소개를 하는 둘입니다.. 부상자부터 공격하는 비겁함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렌고쿠와 약한 자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며, 강한 자는 계속해서 더 강해지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하는 아카자. 이런 대치 상황에서 나오기에 당연한 대사인 것 같지만 식상한 느낌은 아닙니다.
요즘 히어로 애니나 영화를 보면 하나의 거대 빌런을 다수의 히어로들이 해치우거나, 다수의 빌런과 다수의 히어로들이 단체전을 벌이는 구성이 많죠. 거기다가 빌런들은 뭔가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히어로들은 반대로 어딘가 성격이 뒤틀렸거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유형이 인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기존의 클리셰를 탈피한 대결을 보여줌으로써 종국의 히어로의 승리가 과연 진정한 승리인가를 곱씹어보게 하는 패턴으로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애니는 그런 영화들이 외면한 클리셰를 정면으로 내세웁니다. 정의로운 주인공과 그에 반하는 사상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빌런. 그리고 일대 일의 대결. 일대 일 대결이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힘이 강해야 하며, 대결 장면 자체도 볼거리가 많아야 하겠죠.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 허점이 많으면 바로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기 쉬운데, 귀멸의 칼날은 이 부분에서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캐릭터는 엄청나게 매력적이고(이는 원작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매력적입니다. 연출에 많은 공을 들인 티가 팍팍 나죠.), 둘의 대결 장면은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아카자의 살벌함과 렌고쿠의 불같은 정의로움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브금을 배경으로 맞붙는 렌고쿠의 검술과 아카자의 술식은 참으로 화려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특히 아카자의 술식은... 따라 하고 싶어질 만큼 멋지게 표현되고요. 주인공 일행이 감히 끼어들지도 못할 만큼 빠르고 정확한 맞부딪힘. 계속되는 신경전.
아카자는 렌고쿠의 강함에 반해, 자신처럼 오니가 되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보라고 설득합니다. 어차피 너의 강함은 노화와 더불어 덧없이 사라질 것이라면서요. 그러나 렌고쿠는 강함이란 육체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고, 그 덧없음이 인간의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며 역설합니다. 치열한 전투에 한쪽 눈을 잃고 기력이 쇠해져도 렌고쿠는 어머니의 가르침인 강한 자로서의 사명을 떠올립니다.
전투는 화려한 만큼 잔인하기도 합니다. 개봉 당시 19세 이상 판정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만 아카자의 말대로 인간인 렌고쿠는 손상된 신체를 금방 재생시킬 수 있는 아카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내장이 파열되고 뼈가 손상된 렌고쿠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만, 아카자의 주먹이 렌고쿠의 배를 관통해버립니다. 상당히 잔인하고 저의 배까지 아파질 것 같은 일격이죠.
배가 관통당한 상태라면 상당한 고통이 동반될 텐데, 여기에서 렌고쿠는 또다시 유혹을 받습니다. 오니가 된다면 이 정도 상처쯤은 금방 낫는 불사의 몸이 된다면서요. 저는 여기서 최고의 용사의 처절한 모습에 차라리 오니가 되어서라도 살아주었으면 하는 팬심이 생겨버렸습니다. 이대로 죽기에 그는 너무 허망하고 아까왔으니까요. 그래서 이 유혹에 끝까지 넘어가지 않고, 죽음에 이르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렌고쿠의 모습은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굵고 짧은 전투 끝에 아침에 되자, 오니에게 치명적인 태양과 마주칠 것을 염려한 아카자는 가까스로 렌고쿠를 떼어내고 도망칩니다. 그런 그에게 탄지로는 이 전투의 진정한 승자는 상처가 낫지도 않고,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인간의 몸이면서도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낸 렌고쿠라고 외칩니다(그런 탄지로에게 너는 그럼 돕지 않고 뭘 했나 궁금해하실 수도 있지만, 탄지로는 배에 치명상을 입어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웃는 렌고쿠, 그리고 탄지로에게 쏟아지는 명대사.
“가슴을 펴고 살아가라.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이 온몸을 짓눌러도
마음을 불태워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네가 웅크려도 흐르는 시간을 멈춰주지 않는다. 네 곁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죽는 것은 신경 쓰지 마라.
젊은 싹을 위해서 방패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너는 더 성장하여 후배들을 받쳐주어라.
그것을 믿는다.”
귀멸의 칼날 원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마음의 힘입니다. ‘마음이 강한 것이 진정 강한 것이고, 마음의 이어짐이 진정한 불멸이다.’라는 것이죠. 더불어 이 애니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을 똑바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도 살짝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고통이어도, 그래서 달콤한 꿈으로 도망치거나 악인의 유혹에 넘어가고 싶어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똑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앞서 전반부에서 행복한 꿈을 조정하는 오니와 그 꿈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승객들의 모습에 나름의 공감을 느끼던 저로서는 참으로 뼈 때리는 대사이기도 하네요.
눈앞이 흐려지는 렌고쿠의 앞에 그의 어머니가 나타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한 것이 맞느냐는 렌고쿠, 그리고 아주 훌륭하게 잘 해냈다는 어머니의 대답을 들으며 렌고쿠는 칭찬받는 어린아이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죽습니다. 죽어가는 렌고쿠의 연출을 정말이지 최고네요. 아카자는 등장 장면과 최초 술식 사용 장면이 압권이었다면, 렌고쿠는 퇴장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혹자는 이 애니가 어떻게 센과 치히로같은 명작의 흥행 성적을 이길 수가 있는가. 특별할 것 없는 시리즈물 중 일부 아닌가. 주제가 단순하다... 등의 비판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일본에서는 평범한 성장형 소년만화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출의 힘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버렸습니다. 숨 쉴 틈 없는 전개, 적적하게 섞인 개그와 호러적인 분위기,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어떻게 연출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전투, 그리고 음악, 바로 그 음악 호무라...
마지막 주제곡 호무라는 탄지로가 렌고쿠에 대한 감사와 애도를 표현하는 것 같은 노래로 렌고쿠의 죽음을 뇌에 계속 되새김질시켜줍니다. 나중에는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현상도 발생하고요.
귀멸의 칼날 무한 열차 편은 전형적인 전투 +성장형 애니입니다.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당의 일대 일 전투. 클리셰 사용. 그러나 클리셰야말로 어디에서나 먹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어 클리셰가 된 것일 테죠. 클리셰를 사용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렌고쿠와 같은 인간상을 찾아보기 힘든 현 세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은 물론이고, 동기부여나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강연, 도서에서도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인간들과 거리두기를 해라를 강조하고, 영화나 애니에서 조차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정의의 편인 주인공들도 어딘가 인간적인 결함이 많고 뒤틀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애니는 직구를 던졌고, 이것이 마음의 정 중앙에 강하게 박혀버렸습니다. 변화구들을 너무 많이 던지는 영화들을 보다 보니, 이렇게 제대로 정면 승부하는 직구에 오히려 마음이 뒤흔들릴 정도의 신선함과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렌고쿠의 말대로 그들과 함께 마음을 불태웠으니까요.
저에게 이 애니의 단점은 후유증입니다. 혹시 본인이 과몰입러라고 생각되신다면 시청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특히 이 애니의 엔딩곡 ‘호무라’는 듣는 순간부터 뭔가 울컥하면서 렌고쿠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무치게 만드는 마성의 곡입니다. 음악의 힘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무라와 더불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등장하는 렌고쿠의 부러진 칼날은 너무나 슬픕니다.
애니를 보고 왜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지 이해를 못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함께 마음을 불태우실지도 모르니까요. 다 큰 어른이 주위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만화를 보면서 엉엉 울 수 있는 몰입감. 이런 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