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들 (1)

첫 번째 이직 후기 - 부끄럽지만 도망쳤다, 앞만 보고

by 금솔

사실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더 게을러서, 작년 1월 첫 번째 글을 발행하고서는 글을 쓸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네 번의 인턴, 첫 번째 정규직 직장 그리고 첫 번째 이직까지의 과정과 느낀 바를 천천히 풀어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면 오늘의 이야기까지는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오랜만에 노트북을 꺼내본다.

나의 첫 번째 이직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는 어떤 환경에서 더 빛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들어가며


나는 2025년 4월, 정규직으로는 첫 번째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5월,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직한 지 10개월 정도 지난 요즘, 이전 동료들이나 친구들,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 뭔가 좀 달라졌어.” 그렇다. 나는 이직을 한 후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표정이나 말투 같은 사소한 것부터, 업무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자신감까지. 이직을 했을 뿐인데,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나는 미팅에서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반기에 한 번 있는 그룹 워크숍에서 내년에 어떤 것을 해보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였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은 있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아쉬웠던 것도 떠오르는 것은 많았지만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내 생각이 너무 바보 같은 건 아닐지, 이런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누군가 내 말에 반대를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워크숍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6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워크숍이 끝날 때쯤 그룹장이 나에게 한 말은 지금까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잊히지 않는다.

“금솔님은 오늘 묵언수행을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가요?”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모두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이 없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이 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기만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눈물이 났다. 뭐가 그리 어려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나.(이 일화를 이렇게 꺼내는 것조차 사실 너무 고통스럽다.)


그렇다. 나는 혼자 몰두하며 일을 할 때가 오히려 더 좋았다. 이상하게 미팅이나 워크숍, 타운홀처럼 팀 단위 활동이 생기면 유독 긴장을 많이 했다. 말하는 게 두려워서!

회의 시간 전 심박수 체크가 일상이었다.



말을 잘 못하는 걸까, 아니면 말하기 어려운 자리였을까?


전에 일하던 환경에서는 다양한 직군이 함께 모이는 미팅이 자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여러 직군이 모이는 날이면 유독 긴장을 많이 했다. 미팅을 앞두고 늘 많은 준비를 했고, 미팅 중에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중간 단계의 의견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가끔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논쟁이 생기면, 내가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낙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팀 활동 자체가 어려웠다기보다 팀워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 안에 있었고, 그 감각이 자연스럽게 업무 전반과 회사 생활에 대한 만족도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너 이제 이직을 할 때인 것 같아.

4년 동안 내 온갖 좌절과 불안을 옆에서 봐오던 남편은 나에게 진지하게 이직(보다는 사실 퇴사에 가까운 제안)을 권했다. 때마침 회사 상황도 조금 어지러웠던 때라, 딱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에 맞서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기는 쪽은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버텼는데. 나는 나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기 위한 다짐만 반복해 온 셈이다.

사실 그동안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동료들과는 끈끈해졌으며, 입사 초의 불안은 당연한 감정이 되어 무뎌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 생각을 자신 있게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예전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당한 내 모습을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고민은 6개월 정도 이어졌고, 그 사이에 남편, 부모님, 동생 등 정말 많은 내 편들과의 여러 번 상담을 거쳐 결국 퇴사 결정을 하게 되었다.

큰 힘이 되어준 동료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도망치는 건 부끄러웠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환승 이직을 하진 않았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정신적 피로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다음 플랜을 준비하고 퇴사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조언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퇴사하던 당시에는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다고들 말할 정도로 디자이너 공고가 드물게 열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불쌍하게 여기고, 때로는 혐오했던 내 모습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당시 백수이던 남편과 약 한 달 동안 은퇴한 노부부 생활을 체험하며, 정말 나를 ‘치유’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을까?


그리고 동시에, 다음 회사를 간다면 그곳이 어떤 환경이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규모, 연봉, 복지, 네임밸류 등의 요소들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이왕이면 이전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세워보았다.


1. 한국 서비스일 것
2. 기존 산업군과는 완전히 다를 것
3. 기능 조직이 아닌 목적 조직으로 운영될 것
4. 팀에서 내가 유일한 디자이너일 것
5.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가 있을 것


다소 부족한 기준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이정표를 가지고 또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과연 나는 달라질까? 아니면 역시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결국 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될까.

사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TMI 몇 가지

1. 퇴사를 결심하기 전 타로에 빠져서 하루에 몇 번이고 퇴사를 할까 말까 남편에게 타로를 봐달라고 했다. (당시 남편이 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2. 남편이 하루에 3번 이상 같은 질문으로 타로를 볼 정도면, 그건 확신이라고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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