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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an 10. 2024

지브롤터. 세우타. 멜리야


대서양과 지중해를 가르는 반도가 이베리아반도이다. 반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가 있는데 반도의 남쪽 끝에 영국령의 작은 도시 지브롤터(Gibralta)가 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32,195명 정도이며 면적은 6.8㎢ 이며 우리나라 여의도(8.35㎢)의 2/3 크기이다. 지브롤터라는 이름은 아랍어 '자발타리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국령인 지브롤터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바위로 된 섬으로, 아프리카 대륙과의 거리가 11km 밖에 안 된다. 원래는 섬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비행장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으며, 1704년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에 개입했던 영국이 점령한 후 1713년 위트레흐 조약에 의해 영국으로 주권이 넘어가 영국 총독의 지배를 받고 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년~1714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마지막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은 뒤 스페인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이며 유럽의 주요 열강들이 힘을 합쳐 프랑스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려는 것을 막은 것으로 유럽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어 놓은 중요한 전쟁이다.      


도시 남쪽에 큰 바위산(the rock. 해발 426m)이 있고 북쪽에 도시가 있으며 섬의 동서를 가르는 비행장 활주로가 있으며 남북으로는 지브롤터와 스페인을 잇는 윈스턴처칠로(Winston Churchill Avenue)가 활주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활주로의 시작과 끝은 바다이기 때문에 이·착륙를 잘못하면 바다에 빠지게 되어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사용하는 동안 도로에는 차단기가 내려와 자동차와 보행자의 통행이 금지되는 세계 유일한 활주로이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한 식민지로, 방위만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한다. 시의 행정은 시 의회를 대신하여 장관이 관할한다. 1981년 지브롤터인들에게 완전한 영국 시민권이 주어졌으며, 또한 18세가 넘은 남녀 지브롤터인들과 영국 민간인으로 6개월 이상 거주한 자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영국 국왕이 임명한 총독은 행정부의 수반이며 지브롤터 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총독은 총리와 최고 8명의 장관으로 각료회의를 구성하는데, 각료들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이나 연합정당에서 선발한다. 의회는 총독이 임명하는 의장, 4년제 임기의 직선의원 15명, 임명직 의원 2명으로 구성된다.    


지브롤터에는 유럽의 야생 원숭이인 바바리원숭이가 서식한다. 몸길이는 약 60㎝이고 몸 빛깔은 연한 황갈색이며, 얼굴은 털이 없는 연분홍색이다. 유럽에 살고 있는 유일한 야생원숭이로서 아마도 중세기에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영토 확장을 할 때 서쪽으로 이동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전설에 의하면, 영국령인 지브롤터의 암반지대에서 바바리원숭이가 사라질 때 영국에 의한 통치도 종식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스페인은 이곳을 재탈환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며, 특히 1779~83년에는 장기간에 걸쳐 포위 공격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지브롤터는 1830년에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67년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식민지 주민들에게 스페인의 통치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물었다. 투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1만 2,138 대 44)로 영국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지브롤터를 놓고, 스페인에서는 계속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민동의 없이는 반환할 수 없다는 영국 헌법을 이유로 영국은 반환을 거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영국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계속 영국인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지브롤터 위치


그런데 재미있게도 11km 앞에 있는 아프리카의 모로코 바로 앞에 있는 '세우타'라는 섬은 스페인령이다. 원래는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1580년 펠리페 2세 때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합병되면서부터 스페인령으로 바뀌었다. 모로코는 스페인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스페인은 거부하고 있다.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면서도 세우타는 내어줄 수 없다는 스페인의 입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 나라에 있는 타 국가의 땅은 돌려받고 싶고 타 국가에 있는 내 땅은 내어주기 싫은 이기심을 발휘하고 있다.   


세우타(Ceuta)의 인구는 2015년 기준 84,263명 정도이며 면적은 18.5㎢ 이다. 바다 건너 스페인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 보다는 인구는 5만 명 정도가 많고 면적은 3배 정도 넓다. 세우타는 스페인의 카디스 주에 포함되어 있으며,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났을 당시 이곳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스페인으로 원정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세우타는 1580년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의 왕을 겸하는 동군 연합(同君聯合)이 형성되면서 스페인에게 넘어갔고, 1640년 포르투갈이 재 분리된 후 체결된 리스본 조약(1668년)에 의해 정식으로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모로코는 스페인이 영국에 지브롤터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를 차용해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여 왔는데, 스페인은 이에 대해 세우타는 모로코의 알라위 왕조(1631년 ~ 현재)가 성립하기 50년 전부터 400년 이상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스페인의 영토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세우타와 멜리야


세우타 전경


국경을 넘어 멜리아로 가는 모로코인  


또한 모로코의 지중해 연안에는 멜리야(Melilla) 라는 고립 영토가 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86,026명 정도이며 면적은 12.3㎢ 이다. 멜리야는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492년 그라나다를 수복함으로써 781년간의 스페인 내 무어인의 지배를 종식시킨 스페인은 여세를 몰아 1497년에 무어인으로부터 멜리야를 빼앗아 점령하였고 현재까지 500년 넘게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멜리야의 주요 산업은 수산업, 무역업이며, 스페인 본토 및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 멜리야는 스페인 본토뿐만 아니라 모로코와도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멜리야에서 소비되는 대부분 채소와 과일은 모로코 등에서 수입한 것이다. 또, 매일 3만6천여 명의 모로코 사람들이 직장, 무역 등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멜리야를 오간다.   


멜리야 공항에서는 마드리드, 말라가, 알메리아 노선 여객기가 매일 운항하며, 이 공항과 멜리야 항의 페리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와 유럽을 오간다. 또한 알보란해를 두고 마주한 스페인 본토 도시 알메리아와 모트릴을 오가는 여객선도 있다. 반면 세우타에는 공항이 없다. 그러므로 스페인 본토와의 교통은 보통 바닷길을 이용하며 말라가 공항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헬리콥터가 있다. 


스페인은 모로코에 세우타와 멜리야라는 두 도시를 두고 있으며 약 17만명에 가까운 스페인 인들이 모로코에 살고 있으며 반면 스페인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에는 약 7만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는 샘이다. 




사진출처 : 다음 백과사전 및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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