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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an 23. 2024

다락방과 작가

어릴 적 고향 청송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것은 책이었다. 겨울은 추워서 다락방에 올라가기가 싫었지만 봄이 오면 나는 늘 다락방에서 살았다.     


부엌 바닥을 조금 깊게 파고 부엌 천장 위에 다락방을 만들었는데 대여섯 평은 됨직했다. 책은 아버지가 읽으셨던 일본어 서적들과 큰형이 배우던 교과서들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일본어야 봐도 모르는 것이니 포기하고 큰형이 읽던 소설책을 주고 읽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님 웨일즈의 ‘아리랑’ 등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책들을 읽었고 세계문학 전집들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독서에 빠진 시기가 14살, 중학교 입학 때부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까만 교복과 스님처럼 빡빡 밀어야 하는 머리 때문에.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대신 숙제를 주셨다. 오전 시간은 다락방에서 책 읽기가 중학교를 포기한 나에게 준 아버지의 숙제였다.    

 

중학교 1학년, 일 년 동안 일본어 서적을 뺀 나머지 책을 다 읽었고 그 훈장으로 안경을 쓰게 되었다. 겨울에도 전기장판과 두꺼운 이불을 가지고 다락방에서 잤다. 자정이 지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 어머니가 두꺼비집을 내렸고 나는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빨간 비상용 플래시를 켜고 책을 읽었다. 누가 시키면 그렇게 할까. 그리고 그즈음에 빨간 원고지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이 아닌 원고지에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오로지 다락방에서만 살았는데 다락방 생활 2년 동안 가장 나를 힘들게 한 선택이 김동길과 이어령이었다. 

    

이어령이 구수한 숭늉이라면 김동길은 고소한 우유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김동길이 이어령을 이기고 나의 우상이 되었고 그때부터 내 꿈은 고고한 독신이었고 연세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었으며 절대로 사투리를 쓰지 않는 문화인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문화인이 되기 위해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사람들과 말을 적게 했으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는 앙큼하고도 교활한 짓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가 숙어지는 일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참으로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5천 권이란 책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이력도 있고 모범 장서가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책을 기증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일상에서였다. 불교대학을 같이 다닌 동기 스님이 내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많은 책을 자랑삼는 나를 걱정하면서였다. ‘집착’ 모든 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한마디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책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 이후는 책이 어느 정도 모이면 작은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즐거움으로 삼았지만, 아직도 내 집에서 백여 권 이상의 책이 있는 걸 보면 내 집착은 아직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난 아직 우러러 받들 작가는 찾지 못했다. 어린 시절 앙큼한 고민을 하게 만든 김동길이나 이어령도 내 존경은 받지 못했다. 대신. 닮고 싶은, 내 길잡이로 삶고 싶은 작가는 몇 있다. ‘월든’을 쓴 소로우. ‘희랍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까잔쟈키스.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의 복거일. ‘죽음의 한 연구’의 박상륭. ‘선방일기’를 쓴 지허스님 정도이다. 나는 월든 호숫가도 가 보았고 조르바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도 가 보았지만, 선방일기의 무대가 된 오대산 상원사에는 가보지 못했다. 살다 기회가 오면 최소 일주일 정도는 상원사에 머물러 보고 싶다.   

  

과거, 작가가 꿈인 나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 전공이 여러 번 바뀌면서 간호학, 보건행정학, 불교학 등 전문 서적도 읽기는 하였지만, 문학책이 더 많았다. 그러다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 일반교양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철학과 심리학 미술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했기에 가리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종로 1번지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종로서적과 영풍문고, 거기다 알리딘 중고 서점까지 돌면 서점 투어가 끝난다. 반나절은 금방이고 문구까지 보게 되면 하루해가 짧다. 나는 종로 와룡동에서 십수 년을 살았다. 내가 종로에 산 가장 큰 이유는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 때문이었고 다음이 책방 때문이었다. 고향은 청송이지만 더 나이 들어 살 곳을 찾으라면 단연코 나는 종로를 선택할 것이다.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궁궐과 책으로 넘쳐나는 책방을 가까이 두고 산다는 것은 그 어떤 행복에도 뒤지지 않는 크나큰 행복이기에.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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