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잘 가요, 엄마]
김주영 著 윤강 씀
작가 김주영은 나의 고향 청송이 낳은 선배 작가이다.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신부님의 서재에서 우연히 『천둥소리』를 집어 들면서였다. 두꺼운 장편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후 작가 연보를 펼쳐보니, 낯익은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김주영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어릴 적 듣고 말하며 자란 구수한 청송 사투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삭막한 도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내던 고향의 말과 냄새와 풍경이 활자를 통해 되살아났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을 넘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향수를 되찾는 시간이었다.
『잘 가요, 엄마』를 읽는 것은 그래서 더욱 각별했다. 이 소설은 나에게 문학 작품이기 이전에, 고향의 언어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느껴졌다.
김주영 특유의 토속적 언어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이다. 경북 지역의 방언과 농촌의 생활어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독자는 마치 그 시골 마을의 마당 한편에 앉아 어머니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언어는 단순한 지역색을 넘어,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삶의 결과 온도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설치작가인 주인공 '나'는 꼭두새벽, 고향의 배다른 동생에게서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듣는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노년이 된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한 '나'는,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태도로 장례를 치르려 한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고향에 사흘을 머물며, 아버지가 다른 동생과 함께 장례를 치르고 옛일을 추억한다. 그 과정에서 외사촌 누나인 줄만 알았던 애숙이 누나가 사실은 친누나임을 알게 되고, 끊겼던 혈육의 연이 하나씩 이어진다. 그리고 장례를 마친 후, '나'는 결정적인 물건 하나를 발견한다. 엄마가 쓰던 낡은 비닐가방 속,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 어려운 살림에 자식만 돌보느라 엄마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그러나 가방 깊숙이 숨겨두고 소중히 간직해온 그것.
1. 원망과 사랑 사이
이 소설이 다른 '엄마 이야기'들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처음부터 어머니를 그리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제 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장례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회피하려 한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우리 중 누가 부모님께 단 한 점의 원망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2.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단연 낡은 비닐가방 속 립스틱이다. 엄마가 엄마임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자식들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바로 그 무엇. 엄마도 결국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평생 가난과 자식 뒷바라지로 지새운 어머니에게도 곱게 단장하고 싶었던 한 여자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 그 립스틱 하나가 말로 다 하지 못한 어머니의 일생을 대신 설명해 준다.
"어머니가 그걸 써봤든 못 써봤든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립스틱을 넣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
3. 자전적 고백의 힘
이 소설은 작가 김주영의 실제 어머니가 향년 94세로 별세한 경험을 고스란히 옮긴 자전적 작품이다. 자신을 향한 미움과 분노를 알면서도 끝내 자식밖에 없었던 박복한 어머니의 삶이 진부하지만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삶의 무게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사촌으로만 알고 있던 애숙이 누나가 사실은 어머니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순간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은 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 누나가 어머니를 부를 때, 왜 고모라 부르지 않고 꼭 너네 엄마라고만 불렀던 것인지 의구심이 생기고 난 뒤부터. 그리고 누나를 도회지로 야반도주시키는 일을 어머니 혼자서 비밀리에 주선한 것을 목격하고부터. 어렴풋이 우리가 친남매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250쪽)
4.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 시신을 염습대로 옮겼다. 나는 난생처음 누워 있는 어머니와 만났다. 그때까지 잠자리가 아닌 이상 누워 있는 어머니와 대면한 적은 없었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처럼 언제 어디서나 서 있는 사람이었다.“
죽음과 이별의 주제는 소설 전반에 걸쳐 잔잔하게 흐른다. 어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예고된 이별로 서서히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뒤늦은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 감정을 과장하거나 감상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문장으로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속에 더 오래 남는 여운을 만들어낸다.
5. 마치며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 책에서 눈을 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었던 날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방문,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수많은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소설 속 '나'의 원망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나 역시 부모님께 다 털어놓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를 어딘가에 쌓아두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립스틱 장면에서는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어머니도 한때는 곱게 단장하고 싶었던 한 여자였다는 사실이, 어쩐지 오래된 빚을 새로 발견한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위해 서 있는 사람이었지, 그 이전의 삶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과연 '잘 가요, 엄마' 하면서 아무런 후회 없이 부모를 보내드릴 수 있는 자식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 하지 못한 말, 아직 풀지 못한 원망, 아직 전하지 못한 감사. 그것들을 더 늦기 전에 꺼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소설이다.
엄마의 가방 속 립스틱은, 평생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결국 그것은 어머니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였다.”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