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멸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

by 윤강

『긴긴밤』은 멸종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아주 조용한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지구상 마지막 수컷 흰코뿔소 노든. 그는 보호구역 안에서 살아가지만, 이미 세계와 단절된 존재다. 같은 종은 사실상 사라졌고, 그의 시간은 끝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런 노든의 밤에, 길을 잃은 아기 펭귄 ‘이상한 놈’이 들어온다. 둘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구해줄 수도 없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밤을 견딜 뿐이다.


이 소설이 오래 남기는 것은 바로 그 장면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도 함께 있는 것.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곁에 있으려면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긴긴밤』은 그 믿음을 부드럽게 무너뜨린다.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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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의 그림은 이 감정을 더 깊게 만든다. 노든의 주름진 피부, 별이 쏟아지는 밤, 그리고 작고 둥근 실루엣의 ‘이상한 놈’. 그림은 문장을 대신해 말하고, 문장은 그림이 닿지 못한 감정을 이어받는다. 읽는 동시에 보는 경험, 그리고 보는 동시에 느끼는 감각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멸종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존재의 기억을 들려준다. 함께였던 시간, 사라진 존재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이후의 침묵. 숫자로는 와닿지 않던 비극이, 노든의 하루를 통해 비로소 감정이 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이상한 놈’의 내면은 끝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빈자리 덕분에 우리는 더 오래 머문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을 상상하게 되고, 그 침묵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그래서 『긴긴밤』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어떤 만남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만남은 아주 작지만 분명한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긴 밤에, 그저 함께 있어 준 적이 있었던가.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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