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자랑스러운 것: 성실함

by 화리보


내가 가진 자랑스러운 것은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초반부터 독일에 가게 된 중후반까지 가진 능력에 비해 꽤 나쁘지 않은 타이틀과 스펙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서 어깨에 뽕이 상당히 많이 차 있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내 분야에서 이룬 것들 것 마치 내가 정말 잘 하는 사람인양,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인양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학을 가게 된 뒤 내가 그나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타이틀과 배경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에 있던 친구들은 내가 어느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나에게 “그런거 말고 너 뭐 할 줄 아는데?”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질문을 받은 나는 창고를 열어 내가 가진 무기는 무엇인지를 들여다 봤으나 막상 들여다보니 꺼낼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난생 처음 굉장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당시 일기장에 이와 관련한 일들을 기록하며 한가지 목표를 세웠다. 내 유학생활의 가장 큰 목표는 “나만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유학을 가기 전까지는 어학연수도 가본적 없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처음 학기를 시작하고는 몇 개월동안은 굉장히 헤맸던 것 같다. 수업은 보통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당시의 나는 내가 원하는 말을 하기까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사고와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겨우 하고싶은 말을 꺼낼 때면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있었다.


어떻게 나온 기회인데 이렇게 실패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독일은 10월 학기 시작으로 마침 12월이 되어 크리스마스 방학으로 몇 주 정도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있었고, 주변 친구들은 다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곳에 연고가 없는 나에게 친구들은 정말 친절하게도 본인과, 또는 본인의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떤지를 물어봐주었고 나는 고맙지만 나도 다른 일정이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나에게는 그 2~3주 남짓의 시간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동안 뒤쳐졌던 모든 것들을 만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뒤쳐질 예정인 것들까지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적어도 약 2주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좁디좁은 고시원 같은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겨우 식사와 화장실 용무를 해결해가며 마치 이 시간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절실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겨우겨우 따라가던 모습에서 이제는 어느정도 발을 맞춰서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다가왔고 나는 다시 한번 더 그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서 보낸 시간이었다. 살면서 한번도 이정도로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맞이한 시험에서 다른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200% 이상 확신하는 건 분명 나보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은 많겠지만, 적어도 이번 학기에 나보다 많이 공부한 사람은 이 학교에 없을 거다.’ 그정도 준비를 하니 다가오는 시험이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느꼈다. 내가 이들보다 똑똑하지도 않고, 배경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가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능력은 “성실함”이었다. 그들이 30분이면 소화하는 분량을 나는 4시간이 걸려 소화할 수 있더라도 내가 4시간 30분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경험을 한 이후로는 어떤 일에서든 다른 사람 못지 않게 어떤 분야에서 성취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깨달은 것 같다.


벌써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마음은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매일 4시 50분에 일어나며 부족한 역량을 투입하는 시간으로, 양으로 극복하려 한다. 그게 아직까지는 통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성실함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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