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120)

창고안 두사람

by 이 범

촛불이 꺼진 순간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은 창고 밖에서 울부짖고 있었지만, 창고 안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구판길이 떠난 뒤, 촛불 곁에는 단 두 사람만 남았다.
박성표와 백정치.
촛불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으나, 그 흔들림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두 남자의 심장에서 번지는 불안 때문이었다.
백정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면서기님…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한 음절 한 음절마다 떨림이 묻어 있었다.



박성표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고 틈 사이로 늦가을의 달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칼날처럼 차갑고 얇았다.
“다른 방법이 없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 전에 결론이 내려진 사람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이산갑의 학당이 계속 운영되면… 우리 마을 전체가 위험해져.”

불씨의 무게
백정치는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하지만… 불을 지르면… 사람이 다칠 수도…”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성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촛불보다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밤에 하면 되네. 아무도 없을 때.”
백정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방금 들은 말이 단순한 지시인지, 아니면 이미 결정된 범죄의 선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백 씨.”
박성표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자네는 나를 믿나?”
그 질문은 강요가 아니라, 이미 답을 알고 묻는 느낌이었다.
백정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네. 믿습니다.”
박성표는 아주 미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따뜻하기보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갈라지며 내는 소리 같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내 말대로만 하게. 이것은 민족을 위한 일이야. 내선일체만이… 조선이 살아남을 길이네.”
백정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그 말에 반발하는 것처럼.


꺼져가는 윤리
“좋아.”
박성표는 손등으로 성냥갑을 한 번 쓸어내렸다.
“우선 자네 어머니부터 움직이게 하게. 마을 아낙네들 사이에 불안이 퍼져야 해.”
백정치는 힘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박성표는 잠시 멈췄다.
“일본 경찰과 접촉하겠네.”
창고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말은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백정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 이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손은 촛불처럼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바람이 불고 있었다.


두 그림자가 남긴 자국
박성표가 손가락으로 촛불을 꺼버렸다.
촛불은 ‘스윽’ 소리를 내며 사라졌고,
순간 창고 안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문만이 천천히 열리며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창고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그림자 뒤에는 아직 타지 않은 성냥갑 하나가
조용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성냥갑은,
곧 새로운 밤을 열 불씨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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