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정과의 운명
윤화정과의 운명
이기영이 서른다섯이었을 때, 그는 잠시 한양에 머물 일이 있었다.
조정에서 무과 시험관으로 차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났다.
윤화정(尹花貞). 서른 살의 과부였다.
그녀는 남대문 근처에서 작은 주막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기영이 우연히 그 주막에 들렀다.
"주모, 막걸리 한 사발 주시오."
"예, 손님."
윤화정이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이기영은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맑고 강인했다.
며칠 후, 이기영은 다시 그 주막을 찾았다.
"손님, 또 오셨네요."
"막걸리가 좋아서 말이오."
실은 막걸리 때문이 아니었다. 윤화정의 강인함과 품위가 이기영을 끌어당겼다.
"주모, 실례지만... 혼자 주막을 하시오?"
"예.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요."
"자식은?"
"없습니다."
담담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
이기영은 며칠 더 한양에 머물렀다. 그리고 매일 그 주막을 찾았다.
"주모, 나는 이기영이라고 하오."
"저는 윤화정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청혼하고 싶소."
윤화정이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양반이시지 않습니까?"
"그렇소."
"저는 상민입니다.."
"나는 신분을 보지 않소. 사람을 보오."
이기영이 윤화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실은 윤화정은 전주의 몰락한 양반가 출신이었다.
품행이 매우 방정한 인물이었으나. 그녀의 일가에 얹혀살고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병든 고모의 주막일을 잠시 거들고 있는 처지었다
"당신은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소. 이것이 진정한 품격이오."
윤화정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댁의 어르신들이 허락하시겠습니까?"
"설득하겠소. 나는 원칙이 있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오."
아버지의 허락
한양에서 돌아온 이기영은 아버지 이성준에게 말했다.
"아버님, 저 혼인하겠습니다."
"그래? 어느 집 규수냐?"
"윤화정이라는 분입니다. 상민 출신이고... 과부입니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성준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기영의 눈빛은 확고했다.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이냐?"
"강인하고, 품위 있고, 성실합니다.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굽히지 않았습니다."
"흠..."
이성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버님!"
"나는 네가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을 기뻐한다. 신분보다 사람을 본다는 것, 그것이 옳은 원칙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이성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척들도 반대할 것이다. 너는 그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
"견디겠습니다."
"그렇다면 데려오너라. 내가 며느리로 받아들이겠다."
이성준은 외유내강의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세상의 규범을 따르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확고한 원칙을 지켰다.
친척들의 반대
하지만 집안 친척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안 됩니다!"
"우리 집안에 상민 과부를 며느리로 들인단 말이냐!"
"이성준 어른, 어찌 이런 일을 허락하십니까!"
이성준은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 아들의 혼인입니다. 아버지인 제가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체면이..."
"체면?"
이성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사람을 신분으로 판단하는 것이 체면입니까? 제 아들은 사람의 본질을 보고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제가 결정했습니다."
이성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반대하시는 분들은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친척들은 할 말을 잃었다. 평소 온화하던 이성준이 이렇게 단호하게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이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원칙에 관한 일에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 것.
결국 친척들은 물러섰고, 이기영과 윤화정의 혼인이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