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신의 흔적(2)

빵집 앞 참새

by 이 범

빵집 앞 참새

이지은은 27세,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불규칙한 수입, 불안정한 미래,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 모든 것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라는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오전 11시, 지은은 노트북을 들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프로젝트 마감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영감은 오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빈 화면만 바라보다가, 문득 창밖을 보았다.




카페 맞은편 작은 빵집 앞에 참새 한 마리가 있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쪼고 있었다. 다친 참새였다. 지은은 왠지 그 참새가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불안정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참새는 그 자리에 있었다. 빵집 주인 할아버지가 일부러 빵 부스러기를 놓아두는 것 같았다. 지은은 매일 카페에 앉아 그 참새를 지켜봤다.
"다리가 저래도 살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던 지은에게 옆자리 손님이 말을 건넸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목에 성직자 칼라가 보였다.
"살 수 있습니다. 참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새죠."
"그래도 불안할 것 같은데요. 날개로 날 수 없고, 먹이도 제대로 못 구하고."
신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미소 지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저 작은 참새까지도 돌보신다는 뜻이죠."
지은은 신부의 말을 곱씹었다.
"저는 믿음이 없어서요. 신이 정말 저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쓸까요?"
"신경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은 모든 생명 안에 계십니다. 저 참새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임재입니다."

며칠 후, 참새가 보이지 않았다. 지은은 걱정이 되어 빵집으로 갔다.
"할아버지, 다리 다친 참새 못 보셨어요?"
빵집 주인은 환하게 웃었다.
"아, 그 녀석? 어제부터 날더라고. 다리는 아직 절뚝거리지만, 짧은 거리는 날 수 있게 됐어."
"정말요?"
"응. 매일 나와서 지켜보더구먼. 그 새를 좋아했나 보네?"
지은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냥... 궁금했어요.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서."
할아버지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크루아상 하나 드릴까? 갓 구웠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가씨도 힘들어 보이던데. 매일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고. 빵 하나 먹으면서 쉬어가. 사람도 참새처럼 쉬어야 다시 날 수 있는 거야."
지은은 빵을 받아 들고 벤치에 앉았다.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 퍼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천천히 빵을 먹어봤을까.
그때, 다친 참새가 날아왔다. 지은의 발 앞에 앉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은은 빵 부스러기를 떼어 던져주었다. 참새는 부스러기를 쪼며 가끔 지은을 쳐다봤다.
"너도 힘들지? 그래도 살아가는구나. 나도 그래야겠다."

그날 저녁, 지은은 막혔던 디자인 작업을 완성했다. 참새를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레이션이었다. 다친 다리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작은 새. 그 옆에 빵 부스러기를 주는 손. 그리고 배경엔 따뜻한 빛.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던 거예요! 희망과 온기가 느껴져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셨어요?"
지은은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냥... 일상에서 본 거예요. 신이 보내준 영감 같은 거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표현을 썼다. 예전의 지은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일주일 후, 지은은 다시 그 카페에 갔다. 참새는 여전히 빵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훨씬 자유롭게 움직였다. 지은은 할아버지에게서 크루아상을 사서 벤치에 앉았다.
참새가 날아와 그녀 옆에 앉았다. 지은은 부스러기를 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네가 나한테 많은 걸 가르쳐줬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불안해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참새는 부스러기를 다 먹고 짧게 날아올랐다. 서투르지만 분명한 비상이었다. 지은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날 이후, 지은은 달라졌다. 여전히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이었지만, 불안은 줄었다. 매일 아침 창밖을 보며 참새들을 찾았다. 그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용기가 났다.
신이 저 작은 참새까지 돌보신다면, 자신도 분명 돌봄 받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일상에서 발견한 확신이었다.
지은의 방 책상에는 이제 작은 참새 인형이 놓여 있다. 매일 아침 그것을 보며 그녀는 속삭인다.
"오늘도 날 수 있어.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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