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신의흔적(5)

텍시 기사의 라디오

by 이 범

택시 기사의 라디오

무의미한 30년

새벽 4시, 알람이 울렸다. 김철수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일어났다. 58세. 택시 기사 30년차.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주름진 얼굴, 백발이 섞인 머리, 피곤한 눈빛. 언제부터 이렇게 늙었을까. 철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인생이 낯설었다.

"여보, 아침은 먹고 가요."

아내 순희가 부엌에서 불렀다. 철수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된장찌개, 김치, 계란말이. 30년 동안 먹어온 똑같은 메뉴였다.

"오늘도 조심해서 다녀와요."





"응."

짧은 대화. 부부 사이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철수가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게 없었다.

택시에 올랐다. 10년 된 소나타. 주행거리 50만 킬로미터. 이 차와 함께 서울 거리를 수없이 돌았다. 강남, 강북, 강서, 강동. 서울의 모든 길을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대단한 걸까. 그저 길을 아는 것뿐인데.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울렸다. 라디오를 켰다. 새벽 방송이 흘러나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힘찬 하루 시작하세요!"

DJ의 밝은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철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힘찬 하루? 그런 게 자신에게 있었던가.

첫 손님을 태웠다. 강남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젊은 남자였다.

"아저씨, 빨리 좀 가주세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서요."

"네."

철수는 액셀을 밟았다. 30년 경력의 운전 실력으로 최단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요금을 내고 서둘러 내렸다. 철수는 남자의 뒷모습을 봤다. 여행 가방을 끌고 설레는 표정으로 공항으로 들어가는 모습. 철수는 부러웠다. 저 남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은? 30년 동안 같은 도시만 맴돌았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매일 같은 길, 같은 손님, 같은 대화.

두 번째 손님, 세 번째 손님. 하루가 지나갔다.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때웠다.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차 안에서 먹는 식사. 30년 동안 그랬다.

밤 10시, 마지막 손님을 내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수입은 15만 원. 기름값, 렌트비 빼면 8만 원 정도 남는다. 하루 8만 원. 한 달이면 240만 원. 이걸로 아내와 자신이 먹고 살았다.

아들 둘은 이미 독립했다. 큰아들은 회사원, 작은아들은 공무원. 둘 다 결혼해서 자기 가정이 있었다. 명절이나 생일에나 연락이 왔다.

'내가 뭘 했지?'

철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30년 동안 택시를 몰았다. 그게 다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운전대를 잡고, 손님을 실어 나르고, 돈을 벌었다. 그렇게 가족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자랑스러울까. 아들들에게 자신은 어떤 아버지였을까. 그저 돈 벌어오는 사람? 말없이 일만 하는 사람?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TV를 보고 있었다.

"왔어요? 저녁은?"

"먹었어."

"씻고 자요. 피곤하죠?"

"응."

철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고, 택시를 몰고, 손님을 태우고, 밤에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은 이게 다인가.'





철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공허함이 가슴을 채웠다.

심야 라디오의 초대

한 달 후,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철수는 강남에서 마지막 손님을 내려주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 11시 30분. 도로는 한산했다.

라디오를 틀었다. 보통은 뉴스를 들었는데, 오늘은 채널을 돌리다가 한 프로그램에 멈췄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심야의 목소리' 시간입니다. 저는 DJ 은지예요. 오늘은 특별한 코너를 준비했어요. '당신이 고마운 사람에게'라는 코너인데요, 청취자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에서 고마운 사람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시간입니다."




철수는 채널을 돌리려다 멈췄다. 왠지 계속 듣고 싶었다.

"첫 번째 사연입니다. 수원에 사시는 김순희 씨가 보내주셨어요."

철수는 깜짝 놀랐다. 김순희? 아내 이름과 같았다. 설마...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하시네요. 남편분 성함은 김철수 씨. 혹시 지금 듣고 계실까요?"

철수는 차를 급정거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신이었다. 아내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김철수 씨, 당신의 아내 순희입니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라디오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 철수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여보, 우리 결혼한 지 35년이 됐어요. 당신이 택시를 시작한 지는 30년이고요. 30년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쉰 적이 없었어요. 명절에도, 생일에도, 아플 때도 택시를 몰았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어요. 당신이 돈을 벌어오는 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어요."

철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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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한테 미안해요.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할 걸.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할 걸. 당신이 힘들 때 더 많이 안아줄 걸. 그런데 난 그러지 못했어요."

아내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할게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우리 가족의 영웅이에요."

DJ가 말했다.

"순희 씨, 정말 감동적인 메시지네요. 철수 씨가 듣고 계시면 좋겠어요."

"저도요. 남편이 매일 밤늦게 차 몰고 다니면서 라디오 들으니까, 혹시 오늘 들을까 싶어서 용기 내서 신청했어요."

"철수 씨, 사랑하는 아내의 메시지 들으셨나요? 35년 동안 가족을 위해 수고하신 당신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철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핸들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30년 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들의 목소리

철수가 눈물을 닦으며 다시 라디오를 들으려는데, DJ가 말했다.

"그리고요, 순희 씨. 깜짝 이벤트가 있어요. 사실 순희 씨 아들 분들도 메시지를 보내오셨거든요."

철수는 놀라 라디오를 쳐다봤다.

"첫 번째는 큰아들 민수 씨의 메시지입니다."

"아버지."

큰아들의 목소리였다. 철수는 가슴이 떨렸다.

"저 민수예요. 아버지, 제가 언제 마지막으로 아버지한테 전화했는지 기억나세요? 한 달 전 명절 때였어요. 그것도 어머니가 전화 바꿔주셔서 잠깐 통화한 게 전부였죠."

민수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저는 나쁜 아들이에요. 아버지한테 관심도 없었고, 안부도 안 물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늘 거기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화하면 '응, 그래' 하시는 아버지. 말이 없으신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알았어요. 아버지가 왜 말이 없으셨는지. 아버지는 일로 지쳐 계셨던 거예요.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집에 와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셨던 거예요."

민수가 한숨을 쉬었다.

"저는 지금 회사 다니면서 느껴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상사한테 치이고, 스트레스 받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는 거요. 근데 저는 하루 8시간 일해요. 아버지는요? 하루 15시간, 16시간 일하셨잖아요. 30년 동안."

"아버지, 저는 이제야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아버지는 영웅이에요. 제 영웅. 아버지 덕분에 제가 이렇게 컸어요.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하고, 지금 제 가정도 꾸렸어요."

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 사랑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더 자주 연락할게요. 더 자주 찾아뵐게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효도할게요. 아버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철수는 울면서 웃었다. 큰아들. 말 없고 무뚝뚝한 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DJ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작은아들 준수 씨의 메시지도 있어요."

"아버지, 준수예요."

작은아들의 목소리. 철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저는 형보다 더 나쁜 아들이에요. 명절에도 안 가고, 전화도 안 하고. 왜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가 자랑스럽지 않았어요."

준수의 고백에 철수는 가슴이 아팠다.

"제 친구들 아버지는 회사원이고, 의사고, 변호사고. 근사한 직업들이었어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 택시 기사잖아요. 중학교 때 친구들한테 '너희 아버지 뭐 하셔?' 물어보면, 저는 '회사 다니셔' 이렇게 얼버무렸어요. 택시 기사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서요."

철수는 고개를 떨궜다. 알고 있었다. 아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하지만 제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게 됐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30년 동안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힘들어도, 아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택시를 모셨어요. 왜요? 우리 때문이잖아요. 저와 형을 먹여 살리고, 학교 보내고, 대학 보내려고요."

준수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아버지는 자기 꿈을 포기하셨어요. 자기 인생을 포기하셨어요. 오직 우리를 위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사랑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진짜 자랑스러워요. 아버지는 이 세상 어떤 회사원보다, 어떤 의사보다, 어떤 변호사보다 훌륭해요. 왜냐고요? 아버지는 사랑으로 일하셨으니까요.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으니까요."

"아버지, 미안해요. 부끄러워해서. 그리고 고마워요. 저를 키워주셔서. 사랑해요,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아버지."

DJ의 목소리가 들렸다. DJ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철수 씨, 들으셨나요? 사랑하는 가족들의 메시지. 당신은 정말 훌륭한 아버지이고, 남편이에요. 30년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어요. 당신의 사랑이 가족에게 전해졌어요."

철수는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행복해서 울었다. 감사해서 울었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것을, 가족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

그날 밤, 철수는 집에 늦게 들어갔다. 새벽 1시가 넘었다. 아내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어? 걱정했잖아."

철수는 아내 앞에 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내를 안았다. 30년 만에.

"여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라디오... 들었어."

아내는 깜짝 놀랐다.

"어머, 들으셨어요? 저는 혹시나 해서 보낸 건데..."

"고마워. 정말 고마워."

철수는 아내를 꼭 안았다. 아내도 철수를 안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여보, 나도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있어요. 당신은 훌륭한 남편이고, 아버지예요."

"나는... 잘한 게 없는데..."

"아니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다음 날 아침, 철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내가 놀라서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무슨 날인데요?"

"새로운 시작의 날."

철수는 택시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오늘따라 엔진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라디오를 켰다. 아침 뉴스가 나왔지만, 철수는 채널을 돌려 음악 방송을 찾았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첫 손님을 태웠다. 출근하는 회사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철수가 밝게 인사했다. 손님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날씨 좋죠?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렇네요."

손님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철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밝게 대하고, 웃으며 일할 것이다.

왜?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이 의미 있다는 것을. 택시를 모는 것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었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었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점심시간, 철수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수야, 나 아빠야."

"아빠? 무슨 일이세요?"

"아니, 그냥... 어제 라디오 들었다. 고맙더라."

민수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아빠... 진심이었어요. 제가 한 말 다 진심이에요."

"알아. 아빠도 사랑한다. 자주 연락하자."

"네, 아빠. 이번 주말에 갈게요. 아이들 데리고요."

"그래, 기다릴게."

전화를 끊고 철수는 웃었다. 가슴이 따뜻했다.

저녁에는 작은아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준수야."

"아빠!"

"어제 라디오 들었다."

"아빠... 저... 진짜..."

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아. 아빠는 네가 부끄러워한 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괜찮아. 이제는 자랑스럽다고 하니까 아빠가 행복하다."

"아빠,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아들."

그날 이후, 철수의 택시는 달라졌다. 사람들은 철수의 택시를 '행복 택시'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철수가 항상 웃으면서 손님을 대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세요?"

"강남역이요."

"네!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게요. 오늘 좋은 일 있으셨어요?"

철수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고, 때로는 위로해주었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자가 택시에 탔다. 울고 있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네... 죄송해요. 오늘 힘든 일이 있어서요."

"그러셨군요. 말씀하시면 제가 들어드릴게요."

여자는 회사에서 해고당했다고 했다. 철수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손님, 저도 30년 동안 택시를 몰았어요. 처음에는 이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깨달았어요. 모든 일은 의미가 있다는 걸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요."

"어떻게요?"

"사랑으로 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거죠. 그러면 그 일은 의미 있어져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은 분명히 다시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예요. 제가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여자는 요금보다 많은 돈을 주었다.

"거스름돈이요."

"아니에요. 기사님 덕분에 힘을 얻었어요. 고마워요."

여자는 웃으며 내렸다. 철수도 웃었다.

한 달 후, 철수의 택시에는 단골 손님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철수의 택시를 지정해서 불렀다. 왜냐하면 철수의 택시를 타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철수 기사님,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네! 항상 감사합니다!"

철수는 행복했다. 이제 일이 힘들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힘들었지만 의미가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그것이 철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느 일요일, 집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큰아들, 작은아들, 며느리들, 손주들. 모두 모였다.

"아버지, 건배하시죠. 오늘은 아버지 날이에요."

"아버지 날?"

"네. 우리가 만든 거예요. 아버지를 기념하는 날이요."

민수가 케이크를 가져왔다. 케이크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 김철수"

철수는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

"감사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너희한테 많이 못해줬는데..."

"아니에요, 아빠. 아빠는 우리한테 최고를 주셨어요. 사랑을요."

준수가 말했다.

"아빠, 저 이제 아빠 자랑해요. 친구들한테도, 직장에서도.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고요."

철수는 가족들을 바라봤다. 아내, 아들들, 며느리들, 손주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30년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내 인생은 헛되지 않았어.'

철수는 깨달았다. 자신의 30년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가족을 만들었고, 사랑을 나눴고, 수많은 사람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었다.


3년 후, 철수는 환갑을 맞았다. 택시는 계속 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의미로 일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철수의 택시는 이제 서울에서 유명했다. 'TV에도 나온 행복 택시' 말이다. 한 방송국이 철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30년 택시 기사의 삶, 그리고 라디오 방송 이후의 변화.

많은 사람들이 철수에게 연락했다.

"기사님 이야기 듣고 용기를 얻었어요."

"저도 기사님처럼 살고 싶어요."

"제 일도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철수는 모든 연락에 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모든 일은 의미가 있어요. 사랑으로 하면요. 당신의 일도 분명히 의미 있어요. 누군가를 위해 하는 거니까요."

어느 날 밤, 철수는 다시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심야의 목소리'. 3년 전 자신의 인생을 바꾼 그 프로그램.

"오늘 마지막 사연입니다. 택시 기사 김철수 씨가 보내주셨어요."

철수는 놀랐다. 자신이 보낸 사연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DJ님, 안녕하세요. 3년 전 제 인생을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아내와 아들들의 메시지를 듣고, 저는 제 삶이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DJ가 철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30년 동안 택시를 몰면서, 저는 제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아요. 제 30년은 헛되지 않았어요.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었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었고, 하느님이 주신 사명이었어요."

"저는 이제 매일 행복해요. 같은 일을 하지만, 마음이 다르니까 모든 게 달라요. 손님들도 다르게 보이고, 거리도 다르게 보여요. 세상이 아름다워요."

"혹시 저처럼 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당신의 일은 의미 있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이 일하고 계세요."

DJ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 씨, 정말 감동적인 메시지네요. 철수 씨 같은 분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요. 응원하겠습니다."

철수는 웃으며 라디오를 껐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였다. 각각의 불빛 뒤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살아가는 사람들.

철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라디오 너머로 신이 말하고 있었다.

"너는 잘하고 있다. 네 삶은 아름답다. 계속 가거라. 나는 너와 함께 있다."

철수는 핸들을 잡았다. 내일도, 모레도, 그는 이 길을 달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를. 사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 신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택시 기사의 라디오는 오늘도 켜진다. 그리고 그 소리를 통해, 희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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