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182)

검거의 밤

by 이 범


어둠이 내려앉은 면사무소 뒤편, 조병수의 저택.
대문 밖에서는 정혁제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그의 뒤로 순사 셋과 한도회 결사단원 둘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안에 몇 명입니까?"
"조병수, 박성표 면서기, 그리고 하수인 둘. 모두 넷입니다."
정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쥔 체포영장이 땀에 젖어 있었다. 윤서영의 시신을 검안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 손톱이 뜯겨나간 손가락.
'기다리시오, 윤 선생. 오늘 반드시...'



그때였다.
"불이야! 불이야!"
저택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뒷문이 벌컥 열리며 두 명의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지금이다!"
정혁진이소리쳤다. 순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으악!"
먼저 달아나던 박성표가 결사단원의 발에 걸려 고꾸라졌다. 그의 품에서 서류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놔! 놔라고!"
박성표가 발버둥쳤지만 순사 둘이 그를 제압했다.
"박성표, 공문서 위조, 방화 교사, 살인 방조 혐의로 체포한다!"
정혁진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저택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
"조병수는 어디 있나!"
"저, 저택 안에..."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택 2층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탕!
"엎드려!"
정혁진이 외쳤다. 총알이 대문 기둥을 스쳤다. 나무 파편이 튀었다.
"이 개새끼들! 감히 조병수 나리를 잡겠다고!"
2층 창문에서 조병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일제에게서 받은 권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정혁진은 재빨리 담장 그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결사단원에게 눈짓했다.




"뒷문을 막아라. 절대 놓치지 마라."
결사단원 둘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윤서영 선생을 존경했던 한도회 청년들이었다.
"조병수!"
정혁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미 포위되었다! 투항하라!"
"닥쳐!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대일본제국의 협력자다! 감히 나를!"
탕! 탕탕!
조병수는 계속 총을 쏘아댔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총알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정혁진은 조용히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순사에게 속삭였다.




"저택에 불을 지른 것도 저자들이겠지. 증거를 태우려고."
"예. 하지만 1층에서 겨우 꺼낸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시간은 우리 편이다."
정혁진은 담장을 타고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조병수의 시야에서 벗어나 측면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때, 저택 뒤편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악!"
조병수의 하수인이 뒷문으로 도망치다가 결사단원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이 개자식! 윤 선생님을 기억하느냐!"
결사단원의 주먹이 하수인의 얼굴에 꽂혔다. 피가 튀었다.
"말해! 학당에 불 지른 게 누구냐!"
"조, 조 나리가... 조 나리가 시켰습니다! 저는 그냥..."
"그냥? 그냥이라고!"
또 한 대. 하수인이 쓰러졌다.



"산 채로 데려가라. 증언이 필요하다."
정혁진의 목소리였다. 그는 어느새 저택 측면까지 접근해 있었다.
위층에서 조병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야! 어디 갔어! 대답해!"
대답이 없었다. 조병수는 그제야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제군들! 우리 협상을 하자! 내게는 돈이 많아! 금괴도 있고...!"
정혁진은 냉소했다. 그리고 1층 창문을 조용히 열었다.
저택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1층 서재에서 났던 불은 꺼졌지만, 타다 만 서류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정혁진은 그 서류들을 주웠다.
'토지 매매 계약서... 아니, 위조 계약서로군.'
윤서영의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날인된 도장. 하지만 날짜가 이상했다. 윤서영이 이미 감옥에 있을 때의 날짜였다.




"이 개자식들..."
정혁진의 이가 갈렸다.
계단을 조용히 올랐다. 2층 복도는 어두웠다. 조병수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냐!"
조병수가 총을 겨눴다. 하지만 손이 떨려 총구가 흔들렸다.
"나다. 정혁진."
"정, 정 형사... 자, 잠깐! 우리 얘기 좀 하자고! 내가 돈을... 얼마든지...!"
"닥쳐."
정혁진은 한 발짝 다가섰다.
"윤서영 선생을 기억하나?"
"그, 그건... 그건 오해야! 나는 그저...!"
"학당에 불 지른 것도 당신이지."
"아, 아니야! 그건 실수로...!"
"실수?"
정혁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람을 죽여놓고 실수라고?"




"나는... 나는 단지 땅이 필요했을 뿐이야! 일본군 주둔지를 만들려면 넓은 터가 필요했다고! 나는 제국을 위해...!"
탕!
조병수가 총을 쐈다. 하지만 총알은 정혁진의 어깨를 스쳤다.
정혁진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조병수의 손목을 비틀었다.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악!"
조병수가 비명을 질렀다. 정혁진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한 대, 두 대, 세 대.
"정 형사! 그만! 죽입니다!"





아래층에서 순사가 뛰어올라왔다.
정혁딘은 겨우 주먹을 멈췄다. 조병수는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조병수, 방화, 공문서 위조, 살인 방조, 그리고..."
정혁진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친일 행위로 체포한다."
"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총독부와 연결된 사람이야! 너 같은 조선인 형사 따위가...!"
"시끄러워."
정혁진은 수갑을 채웠다.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새벽.
면사무소 유치장.
조병수와 박성표는 나란히 갇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 이 새끼가 서류를 제대로 위조하지 못해서...!"
"나보고 뭐라고! 당신이 학당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정혁진은 그들의 말다툼을 무시하고 서류를 정리했다. 증거는 충분했다. 위조된 토지 문서, 방화 목격자, 그리고 하수인의 자백.
"정 형사님."
문 밖에서 한도회 결사단원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직접 처리하게 해주시오. 법으로는 이자들이 빠져나갈 겁니다."
정혁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윤서영 선생님도 그렇게 원하실 겁니다. 법으로."
결사단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정혁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유치장 안에서 조병수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살려줘... 제발... 나는... 나는 단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밤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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