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186)

저녁식탁

by 이 범

저녁을 다 먹고 상을 물렸다.
아이들은 마루에서 놀고 있었다. 지는 동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건 '하늘 천(天)'이야."
"천~"
"맞아! 계민이 똑똑하네."
"나도 알아! 나도 알아!"
의호가 손뼉을 쳤다.
이산갑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지윤이 차를 들고 왔다.





"차 드세요."
"고맙소."
두 사람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았다.
마당에는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고 있었다.
"학당은 어떻소?"
이산갑이 물었다.
"잘 되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더 많이 오고 있어요."




"그래?"
"네.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나 봐요."
지윤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다 선생님 덕분이죠. 선생님이 그렇게 헌신하셨으니..."
이산갑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윤서영(尹瑞英) 선생.
학당을 세우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다 일제에 잡혀가 고문받고 돌아가신 분.
"선생님께서... 지금 보시면 기뻐하실 거요."
이산갑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학당을 이렇게 잘 이끌어주고 있으니."
"제가 뭘... 다 마을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에요."
지윤은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 학당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가 날로 심해지고 있었고, 조선어 교육도 제한받고 있었다.
하지만 지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일본어와 산술(算術)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몰래 조선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요즘 일본인들이 더 심해졌다면서요?"
지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이산갑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마다 켄죠(島田健三)라는 자가 이 지역 책임자로 왔소. 그자가... 아주 악독한 자요."
"들었어요. 징용(徵用)도 늘리고, 공출(供出)도 더 많이 하라고 한다면서요."
"그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식량도 다 빼앗아 가려고 하지."
이산갑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위안부(慰安婦) 차출도 시작됐소."
"네?"
지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린 처녀들을 '근로정신대(勤勞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데려간다고 하더군. 실상은... 일본군 위안부로 보내는 거요."
"세상에..."
지윤의 손이 떨렸다.
"우리 마을에서도?"
"아직은 아니오. 하지만... 곧 올 거요."
이산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은 여전히 밝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일본인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요."
"예?"
"겉으로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우리 사람들이 피해를 덜 입도록... 그렇게 하려고요."
지윤은 남편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있었다.
"힘드시겠어요."
"괜찮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산갑은 지윤의 손을 잡았다.
"당신도 힘들 텐데... 학당 일에 아이들 키우기까지."
"저는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해요."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의호야, 그게 아니야!"
"킥킥킥!"
그 소리가 두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우리...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버텨야 해요."
지윤이 말했다.
"그래요. 이 아이들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이산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꼭 올 거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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