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187)

밤의 대화

by 이 범

밤의 대화 (夜話)
아이들을 재운 뒤, 이산갑과 지윤은 사랑방에 마주 앉았다.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서방님,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소."



"학당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오."
"네. 요즘은... 마을 부녀회(婦女會)에서도 도와주세요."
"부녀회?"
"네. 제가 시작한 건데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서 서로 돕는 모임이에요."




지윤의 눈빛이 반짝였다.
"요리법도 나누고, 살림 지혜도 나누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당도 돕게 됐어요."
"어떻게 돕는데?"
"아이들 간식도 만들어주시고, 교재도 만드는 걸 도와주시고... 무엇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는 데 도움을 주세요."
"오..."
이산갑은 감탄했다.
"그리고 제가 요즘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요리법?"
"네. 요즘 쌀이 귀하잖아요. 그래서 산과 들에서 나는 것으로 영양 있는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드려요."
지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도토리(橡實)로 묵을 쑤는 법, 칡뿌리(葛根)로 전분을 만드는 법, 산나물로 반찬을 만드는 법..."
"대단하구려."
"별것 아니에요. 다 옛날부터 내려오던 방법들이에요. 제가 어머니께 배운 것들이죠."
지윤의 어머니는 양반가(兩班家)의 규수였지만, 실용적인 지혜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약초(藥草)를 이용한 민간요법(民間療法)도 알려드려요. 서방님께 배운 거죠."
"허허, 내가 당신한테 제대로 가르친 게 있구려."
"당연하죠. 서방님은 제 스승이기도 하니까요."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산갑과 지윤의 인연은 특별했다.
지윤은 원래 한양(漢陽)의 양반가 딸이었다. 하지만 집안이 몰락하면서 이 시골 마을로 피난 왔고, 거기서 이산갑을 만났다.
처음에는 신분 차이 때문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진실했고,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세 아이의 부모가 되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당신 덕분에 마을이 많이 살기 좋아졌소."
이산갑이 말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더군. '강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과찬이세요."
"아니오. 사실이오. 당신은... 이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소."
지윤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그게 바로 위대한 거요."
이산갑은 진지하게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창한 일만이 아니오. 당신처럼 매일매일 작은 선행(善行)을 실천하는 것, 그게 진정한 변화를 만드는 거요."
지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서방님."
"내가 고맙지. 이런 훌륭한 아내를 만나서."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촛불이 깜박였다.
"서방님."
"응?"
"조병수(趙炳洙)와 박성표(朴成杓) 사건... 들으셨죠?"
"응, 들었소."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혁제(鄭赫濟) 형사가 둘을 체포했다더군."
"다행이에요. 그 악당들이 드디어..."
지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윤서영 선생님을... 그렇게 모함하고, 학당까지 불태우고..."
"응. 이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요."
"하지만..."
지윤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마다 켄죠가 가만있을까요? 그자들은 시마다와 한패잖아요."
"그게 문제지."
이산갑은 한숨을 쉬었다.
"시마다가 총독부(總督府)에 손을 써서 빼내려고 할 거요."
"그럼 어떡하죠?"
"우리가 막아야지."
"어떻게요?"
"증거를 더 확보하고, 여론(輿論)을 만들어야 해요. 일본인들도 법(法)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이산갑은 담뱃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도회 결사단도 움직일 거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지. 하지만 해야 할 일이오."
지윤은 남편의 손을 꽉 잡았다.
"조심하세요. 제발."
"걱정 마시오. 나도 이제 조심스럽소. 당신과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산갑은 지윤의 손을 다시 잡았다.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이 어려운 시대를."
"네, 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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