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199)

징용장 (徵用狀)

by 이 범


평온한 오후 (平穩)
1938년 9월 초,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 리쉬는 오후.
이산갑(李山甲)은 대청 옆 서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두툼한 원고 뭉치가 놓여 있었다. 『조선식물도감(朝鮮植物圖鑑)』— 그가 십여 년간 산과 들을 헤매며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붓을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고쳐 적었다.
"'산삼(山蔘)'은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자생하며..."
창밖으로는 가을 매미 소리가 들렸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지난 몇 달간 마을을 지키느라 정신없이 보냈지만, 오늘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 책만 완성하면... 우리 식물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수 있을 텐데.'
이산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탈고(脫稿)까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마지막 교정만 끝내면 되었다.




그때였다.
"어르신."
대청마루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산돌입니다. 잠시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이산갑은 붓을 내려놓았다.
김산돌(金山乭). 스물두살의 젊은 청년으로, 한도회(韓道會) 결사단원이자 마을의 유망한 청년이었다.
평소 활달하고 명랑한 산돌이었는데, 오늘 목소리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산갑은 책상을 정리하고 서재 문을 열었다.
"어, 산돌이구나. 잠시 대청에서 기다려라."
"예, 어르신."
대청으로 나서자 산돌이 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달리 얼굴이 창백했다. 두 손을 꼭 쥐고 있었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응, 앉거라."
이산갑은 산돌을 마루에 앉게 하고,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래, 무슨 일이냐?"
산돌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고리 안쪽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이산갑에게 내밀었다.
"이... 이것이..."
이산갑은 서류를 받아 펼쳤다.
첫 줄을 읽는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월, 화, 목,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