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01)

시대의 광풍 (狂風)

by 이 범

시대의 광풍 (狂風)
산돌을 돌려보낸 후, 이산갑은 서재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원고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상 옆 찬장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거기에는 신문 스크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년 4월 1일 자:
"국가총동원법 공포.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의무."
『경성일보(京城日報)』, 1938년 7월 15일 자:
"반도(半島) 청년들, 성전(聖戰)을 위해 떨쳐 일어서라!"
그리고 가장 최근의 것.
『매일신보』, 1938년 8월 25일 자:
"조선노무협회 발족. 이영근 촉탁,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실현' 강조."
기사 아래에는 이영근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조선인이었다. 하지만 일본식 양복을 입고, 일본도(日本刀)까지 차고 있었다.
'친일파(親日派) 개자식...'
이산갑은 신문을 구겼다.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
1938년 4월, 일본 제국의회가 통과시킨 악법이었다.
전시(戰時)에 국가가 인력과 물자를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다는 내용.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처음에는 "모집(募集)" 형식이었다. 일본 공장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준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적자 곧 "알선(斡旋)" 형식으로 바뀌었다. 마을 이장이나 면장이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징용(徵用)".
강제였다.
거부하면 감옥이었다.
'그리고 조선노무협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서...'
이산갑은 다시 산돌이 가져온 서류를 펼쳤다.



이영근이 쓴 글을 천천히 읽었다.
"젊으니 들은 쌈 터에 갓스니..."
문법도 틀리고, 표현도 어설펐다.
하지만 의도는 명확했다.
'조선 청년들을, 스물도 안 된 어린 청년들을 세뇌시켜서, 기꺼이 일본을 위해 일하게 만들겠다는 거지.'
이산갑은 주먹을 쥐었다.
'과연 이 말을 믿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을 할 조선 청년이 있을까?'
있었다.
슬프게도, 있었다.
학교에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매일같이 선전하는 내용이었다.
"조선과 일본은 하나다. 내선일체(內鮮一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위해 협력하자."
"천황폐하(天皇陛下)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광이다."
어린 학생들은 그것을 믿었다. 아니, 믿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영근 같은 친일파들은 그 선전의 첨병이 되어, 같은 조선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보였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고,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얇은 종이장만큼이나 취약했다.




언제든 찢어질 수 있었다.
징용장 하나로.
공출 명령 하나로.
일본군의 총부리 하나로.




'산돌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산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 징용에 응하는 것.
일본 본토의 미쓰비시 공장으로 가서, 전쟁 무기를 만드는 것. 조선을 침략한 바로 그 일본을 위해 일하는 것.
그리고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니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
둘, 도망치는 것.
산으로 숨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족이 연좌제(連坐制)로 처벌받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어느 쪽도... 답이 아니야.'



이산갑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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