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02)

마을의 신음 (呻吟)

by 이 범


저녁 무렵.
이산갑은 마을 이장 김주사(金主事)의 집을 찾아갔다.



"산감나리, 어서 오시오."
김주사는 육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자, 모두가 존경하는 어른이었다.




"주사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그러시오. 앉으시오."
두 사람은 사랑방에 마주 앉았다.
"이번 징용... 산돌이 만 당한 게 아니지요?"
"... 그렇소."
김주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 마을에서만 다섯이오. 산돌이, 철수, 영식이, 그리고... 춘삼이하고 용팔이."
"다섯이나..."
"이번만이 아니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계속 올 거라고 하더군."
김주사는 한숨을 쉬었다.




"면사무소에서 할당량(割當量)을 정해서 내려보낸다고 하오. 우리 면에서 매달 스무 명씩."
"스무 명..."
"그래서 마을마다 돌아가면서 사람을 내야 한다는 거요."
이산갑은 주먹을 쥐었다.
"그럼 결국 마을의 젊은이들이 다 끌려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되겠지요."
김주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산감나리, 나도...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이장 노릇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다니..."
노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면장이 호통을 치오. '황국신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협조하지 않으면 마을 전체를 처벌하겠다'라고..."
"면장이 누굽니까?"
"박성표(朴成杓) 요."




"아..."
이산갑은 이를 갈았다.
박성표. 조병수(趙炳洙)와 함께 학당에 불을 지르고, 윤서영(尹瑞英) 선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자.
정혁제(鄭赫濟) 형사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었지만, 시마다 겐죠(島田健三)의 힘으로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자가... 이번 징용도 주도하고 있군요."
"그렇소. 조선노무협회와 짜고서 말이오."
김주사는 고개를 저었다.
"더 기막힌 건, 그자가 징용 대상자를 고르면서 뇌물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소."




"뭐라고요?"
"돈을 주면 명단에서 빼준다는 거요. 그래서 부자들은 돈으로 자식을 빼내고, 가난한 집 자식들만 끌려간다는 거 아니오."



이산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개자식이..."
"산돌이네는 가난하지 않소? 어머니 혼자 농사지어서 근근이 사는데..."
"예."
"그러니 명단에 올라간 거요."
이산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주사 어르신, 제가 면사무소에 가보겠습니다."
"뭘 하려고?"
"박성표를 만나보겠습니다."
"나으리 , 위험하오. 그자는 이제 시마다의 개나 다름없소."
"그래도 가봐야겠습니다."
이산갑은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서 우리 청년들이 끌려가는 걸 볼 수는 없습니다."

월, 화, 목,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