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신의흔적 (18)

우체부의 마지막 배달

by 이 범


우체부 민석은 30년째 같은 동네를 배달하고 있었다. 요즘은 우편물이 줄었다. 이메일과 택배가 대신하니까. 하지만 민석은 이 일을 사랑했다.

"편지에는 온기가 있어요. 손으로 쓴 글씨, 정성껏 고른 우표.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있죠."

올해로 정년퇴직. 민석의 마지막 배달 날이었다. 아침 9시, 마지막 배달을 시작했다.

첫 번째 집, 신혼부부. 청첩장이 왔다.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두 번째 집, 대학생. 합격 통지서였다.

"아저씨! 붙었어요!"

"축하해. 공부 열심히 해."

배달을 하면서 민석은 생각했다. 30년 동안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은 편지를 배달했을까. 기쁜 소식, 슬픈 소식, 사랑의 편지, 이별의 편지.

그는 단순히 우편물을 전달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인생을 이어준 것이었다.

마지막 집. 103호, 독거노인 박 할머니 댁이었다. 민석은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 저예요. 우체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민석은 불안해졌다. 문손잡이를 돌려봤다. 열려 있었다.

"할머니!"

거실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의식이 없었다.



민석은 재빨리 119에 전화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저예요, 우체부!"

할머니의 눈이 조금 떠졌다.

"우체부... 님..."

"네, 제가 왔어요. 곧 구급차 와요."



구급차가 도착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민석도 함께 갔다.

의사가 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 겁니다. 우체부님이 발견하셔서 다행이에요."

민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병실에서 할머니가 깨어났다. 민석을 보자 눈물을 흘렸다.

"우체부님... 고맙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세요."

"아니에요, 할머니. 당연한 일 했어요."

"우체부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들었어요. 퇴직하신다고."

"네, 맞아요."

할머니는 민석의 손을 꼭 잡았다.



"30년 동안 고마웠어요. 우체부님이 오는 게 제 유일한 낙이었어요. 혼자 사는 제게 우체부님은 가족이었어요."

민석은 눈물을 참았다.

"저도 할머니 보는 게 좋았어요."



며칠 후, 퇴직식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민석에게 감사패와 꽃다발을 줬다.

"우체부님,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 동네 천사였어요!"

"우체부님 없으면 어떡해요?"

민석은 울었다. 30년 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어요. 이 일이 단순한 배달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셔서요."

박 할머니도 휠체어를 타고 왔다.


"우체부님, 이거 받으세요."

편지 한 통이었다. 민석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었다.

"사랑하는 우체부님께. 30년 동안 매일 저희 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체부님 덕분에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우체부님은 편지만 배달한 게 아니라, 희망을 배달하셨습니다. 하늘에서도 복 받으실 거예요. - 103호 박 할머니"

민석은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퇴직 후, 민석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독거노인들을 방문하는 일. 예전 배달 경로를 따라 걸으며 어르신들을 만났다.

"우체부님! 또 오셨어요?"

"네, 이제는 편지 대신 제가 직접 왔어요."

어느 날, 민석은 새 우체부를 만났다. 젊은 청년이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30년 동안 한 동네를 배달하셨다고 들었어요."

민석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일은 단순히 편지 배달이 아니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야. 그걸 잊지 마."

"네, 명심하겠습니다."

민석은 동네를 걸으며 기도했다.

"주님, 30년 동안 이 동네를 돌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당신의 전령으로 사용하셨고, 사랑의 배달부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걷겠습니다. 계속 인도해 주소서."

우체부의 마지막 배달은 끝났지만, 사랑의 배달은 계속된다.

신은 우편함에도 계시고, 30년을 한결같이 걸은 발걸음 속에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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