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길
붉은 길
도주
1937년 7월, 난징
백정치는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포성에 잠을 깼다. 멀리서 들려오는 둔탁한 폭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본군이 난징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형님, 깨셨습니까?"
김한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백정치보다 다섯 살 위인 김한오는 1926년 조선에서 사회주의 사상단체를 조직했던 김형선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중국 공산당원이었고, 난징의 조선인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김한오는 한시간여 안밖을 살피고 연락을 취하여보더니 사람들을 불러모우라 말하였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을때 김한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소." 김한오의 목소리에는 긴박함이 묻어 있었다. "내일 새벽, 우리 일행 모두 난징을 빠져나갈 것이오. 옌안으로 가야 하오."
백정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징용을 피해 조선을 탈출한 지 이제 겨우 1년. 난징에서 김한오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고 겨우 숨을 돌렸는데, 또다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백정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머슴 출신, 상놈이라는 굴레. 그것이 그를 여기까지 몰아온 것이다. 조선에 남았다면 징용에 끌려가 죽었을 것이고, 난징에 남는다면 일본군의 총탄에 죽을 것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