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08)

새벽탈출

by 이 범


새벽 네 시, 김한오를 따르는 식솔 열두 명이 난징 외곽의 한 창고에 모였다. 모두 조선인이었다. 징용을 피해 온 자, 빚을 지고 도망친 자, 독립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떠돌아다니는 자들. 각자 사연은 달랐지만 모두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었다.




"옌안까지는 천 리가 넘소. 길은 험하고 일본군과 국민당군이 곳곳에 있소." 김한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옌안에 가면 우리는 안전하오. 마오 주석이 우리 조선인들을 받아들일 것이오."
백정치는 김한오의 말을 들으며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공산당. 그들이 말하는 평등사회. 신분도, 착취도 없는 세상. 그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 고생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행은 북서쪽으로 향했다. 화물차에 몸을 숨기고,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소달구지를 얻어 타고 이동했다. 일본군의 검문소를 피하기 위해 산길로 우회하고, 국민당 통제 지역에서는 중국인 행세를 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천 리 길
스무날째 되는 날, 일행은 황허강 근처에서 일본군 순찰대와 마주쳤다. 총성이 울렸고, 일행 중 두 명이 쓰러졌다. 백정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 일본어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조선 놈들이다! 쏴라!"
백정치의 귀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숲 속으로 뛰어들었고, 가시덤불에 온몸이 찢겼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을 달린 끝에 겨우 일본군을 따돌렸다.
흩어진 일행은 사흘 후 정해진 집결지에서 다시 만났다. 열두 명 중 아홉 명만 살아남았다. 김한오는 침통한 얼굴로 죽은 동료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동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맙시다. 우리는 반드시 옌안에 도착해야 하오. 그리고 언젠가 조선을 해방시켜야 하오."
백정치는 김한오의 말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선 해방. 그 거창한 말이 그에게는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자신의 비참한 과거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머슴이 아니라 혁명가. 상놈이 아니라 민족해방의 투사. 그런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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