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의 아침
강민준은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들었지만, 그의 마음은 어두웠다.
옆에 누워 있어야 할 아내 서연이 없었다. 베개만 차갑게 식어 있었다.
병원이었다.
3개월 전, 서연은 암 진단을 받았다. 췌장암 4기. 의사는 말했다. 6개월에서 1년.
"왜입니까?"
민준은 하느님께 물었다. 아니, 따졌다.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에덴 같던 우리 삶이 왜 이렇게 무너져야 합니까?"
결혼 3년 차. 그들은 제주도의 작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생명의 정원'을 가꾸며,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지만 어느 날, 뱀이 찾아왔다.
아니, 병이 찾아왔다.
"민준 씨."
서연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진 그녀였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왜 안 자고 있어요? 밤새 기도했어요?"
"응... 잠이 안 와서."
민준은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하느님께 항의하고 있었다.
서연이 침대에 앉았다. 민준의 손을 잡았다.
"당신, 화났죠? 하느님께."
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엔 화났어요."
서연이 조용히 말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에덴을 쫓겨난 아담과 하와처럼..."
"그 얘기하지 마."
민준이 손을 뿌리쳤다.
"우리는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선악과도 안 먹었고, 하느님께 불순종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민준 씨."
서연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창세기를 다시 읽어봐요. 에덴에서 쫓겨난 게 끝이 아니에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중요해요."
땀 흘리는 삶
서연은 퇴원했다.
의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라고 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민준이 물었다.
"길어야 석 달... 짧으면..."
의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서연은 놀랍게도 정원으로 나갔다.
"뭐 해요? 들어가서 쉬어야죠."
"정원을 돌봐야죠. 우리 에덴을."
서연은 호미를 들었다. 약해진 몸으로 땅을 일궜다.
"성경 말씀 기억나요?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그게 벌이잖아요. 에덴에서 쫓겨난 대가."
민준이 쓰디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은총이예요."
"은총? 땀 흘려 일하는 게?"
"네.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서연은 땅을 파며 계속 말했다.
"에덴에서는 그냥 따 먹기만 하면 됐어요. 쉬웠죠. 하지만 의미가 있었을까요? 에덴 밖에서 땀 흘려 일구고, 수확하고, 그걸로 양식을 만드는 과정... 그 안에 진짜 삶이 있어요."
민준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생명으로 가득했다.
"도와줄래요?"
서연이 손을 내밀었다.
민준은 망설이다 호미를 들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매일 정원을 일궜다.
토마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다.
처음엔 힘들었다. 땀이 흘렀다. 허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통 속에서 평화가 찾아왔다.
"알겠어요."
어느 날 저녁, 민준이 말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뭐요?"
"에덴 밖의 삶. 땀 흘려 일하는 것. 이게 벌이 아니라 은총이라는 거."
민준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굳은살이 박였다.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느껴요. 당신과 함께 이 땅을 일구는 게 행복해요."
서연이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요. 함께 있어줘서."
"아니, 내가 고마워. 당신이 가르쳐줘서."
그날 밤, 서연은 민준에게 창세기를 읽어달라고 했다.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왈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도 하와예요."
그가 말했다.
"생명의 어머니. 나에게 진짜 삶이 뭔지 가르쳐준 사람."
가죽옷의 의미
두 달이 지났다.
서연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이제는 정원에 나갈 힘도 없었다.
민준이 혼자 정원을 돌봤다. 서연을 위해. 그들의 에덴을 위해.
토마토가 익었다. 붉고 탐스럽게.
민준은 가장 잘 익은 것을 따서 서연에게 가져갔다.
"여보, 우리 토마토. 먹어봐."
서연이 한 입 베어 물었다. 눈물이 흘렀다.
"맛있어요. 우리가 함께 키운 거..."
"응. 당신 땀과 내 땀이 섞인 거야."
그날 밤, 서연이 갑자기 말했다.
"민준 씨, 제가 죽으면..."
"그런 말 하지 마."
"들어요. 제가 죽으면 제 장기를 기증하고 싶어요."
민준은 놀라 서연을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성경 말씀 있잖아요.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그게 무슨..."
"생각해 봤어요. 가죽옷을 만들려면 동물이 죽어야 해요.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쫓아내신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한 생명을 희생시키신 거예요."
서연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그게 첫 번째 은총이었어요. 벌거벗은 그들을 가리고,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제 죽음이 누군가의 생명이 되면 좋겠어요. 제 눈으로 누군가 세상을 보고, 제 심장으로 누군가 사랑하고, 제 간으로 누군가 살면..."
민준은 아내를 끌어안았다.
"당신... 정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듯이, 저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옷을 입혀주고 싶어요."
민준은 한참을 울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다음 날, 민준은 장기기증 서류를 준비했다.
서연은 편안한 얼굴로 서명했다.
"고마워요."
"아니, 내가 고마워. 당신이 나를 변화시켰어."
그날 저녁, 신부님이 찾아왔다.
"서연 씨, 병자성사를 드릴까요?"
"네, 신부님. 준비됐어요."
신부님은 성유를 꺼내 서연의 이마에 바르며 기도했다.
"주 하느님, 당신의 종 서연을 굽어살피소서. 그녀가 당신의 품으로 돌아갈 때, 평안히 맞아주소서."
"그녀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민준도 함께 기도했다.
"하느님, 제 아내를 당신께 맡깁니다. 그녀가 제게 가르쳐준 것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에덴 밖의 희망
일주일 후, 서연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민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당신... 생명의 정원... 계속 돌봐요."
"응, 약속할게."
"그리고... 다시 사랑하세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사랑해야 해요."
"당신이 최고야. 다른 사람은..."
"아니요."
서연이 힘주어 말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또 다른 하와를 보내주실 거예요. 받아들여요. 그게... 생명이에요."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
서연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작은 성당에 몇몇 사람들만 모였다. 민준은 눈물 없이 아내를 보냈다.
"울지 않으시네요."
신부님이 말했다.
"서연이가 울지 말래요. 자기는 에덴으로 돌아간다고. 진짜 에덴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화장을 하고, 유골은 생명의 정원에 뿌렸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
민준이 중얼거렸다.
"당신, 이제 이 땅의 일부가 됐어. 토마토도, 사과나무도, 모든 게 당신이야."
서연의 장기는 다섯 명에게 이식되었다.
심장은 심장병을 앓던 열두 살 소녀에게.
간은 간경화로 고생하던 아버지에게.
신장은 투석 중이던 청년에게.
각막은 시각장애인 두 명에게.
"가죽옷이 되었구나."
민준은 생각했다.
"당신이 진짜 생명의 어머니가 됐어."
석 달이 지났다.
민준은 여전히 생명의 정원을 돌봤다. 매일 아침 일어나 땅을 일궜다.
땀을 흘렸다. 허리가 아팠다. 손에 굳은살이 더 박였다.
하지만 그 고통이 좋았다.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네가 에덴을 나가서 다행이야."
어느 날 그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에덴에서는 진짜 사랑이 뭔지 몰랐을 거야. 고통이 없으니까. 상실이 없으니까."
가을이 왔다.
정원의 나무들이 열매를 맺었다. 사과, 감, 밤.
민준은 수확한 과일들을 상자에 담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혼자 먹기 아까워서요. 나눠 드세요."
"고마워요.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죠?"
"괜찮아요. 아내가 가르쳐줬어요. 에덴 밖에서 사는 법을."
어느 일요일, 민준은 미사에 갔다.
독서 말씀이 창세기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민준은 그 말씀을 새롭게 들었다.
'내치시어'가 아니었다. '보내시어'였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벌하신 게 아니라, 새로운 여정으로 보내신 것이었다.
에덴 밖에서 땀 흘리며, 고통받으며, 그러면서도 사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그리고 가죽옷을 입혀주셨지."
민준은 생각했다.
"벌거벗고 쫓아내신 게 아니라, 옷을 입혀 따뜻하게 보호하며 보내신 거야."
미사가 끝나고, 한 여자가 민준에게 다가왔다.
"민준 씨 맞으시죠? 저... 심장을 이식받은 소연이 엄마예요."
민준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시구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우리 소연이가 살았어요. 당신 아내 분 덕분에.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 딸이 이제 뛰어놀아요. 친구들이랑 웃고. 아내 분의 심장으로."
민준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제 아내가... 기뻐할 거예요."
"혹시... 소연이 만나보실래요? 아내 분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어요. 소연이가 누구 덕분에 살게 됐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민준은 소연이를 만났다.
열두 살 소녀는 밝은 미소로 그를 맞았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저한테 심장 주셨다며요?"
"응. 우리 아내가... 너 같은 친구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랐어."
"감사해요!"
소연이가 포옹했다. 민준은 소녀의 가슴에 귀를 기울였다.
뛰고 있었다. 서연의 심장이.
"여보..."
민준은 속으로 말했다.
"당신 아직도 살아있네. 이 아이 안에서."
그날 저녁, 민준은 생명의 정원에 앉아 일기를 썼다.
"오늘 당신의 심장을 만났어. 소연이라는 아이 안에서 뛰고 있더라.
에덴에서 쫓겨난 게 절망이 아니었어. 새로운 시작이었어.
우리는 땀 흘려 일하고, 고통을 겪지만, 그 안에서 진짜 사랑을 배워.
당신이 죽었지만, 다섯 명 안에서 살아있어. 가죽옷처럼 그들을 보호하며.
에덴 밖이 더 아름다워.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니까.
고통 속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희생하고 사랑하는 법을."
1년이 지났다.
민준은 생명의 정원에서 작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생명의 학교"라고 이름 붙였다.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정원을 일궜다.
"우리는 에덴 밖에 살아요."
민준이 말했다.
"완벽하지 않아요. 고통도 있고, 죽음도 있어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해요."
"땀 흘려 일하는 것, 서로 돌보는 것, 희생하는 것. 그게 에덴 밖의 은총이예요."
사람들은 함께 땅을 일궜다. 울고, 웃고, 나누며.
"이게 진짜 에덴이네요."
한 참가자가 말했다.
"완벽한 동산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함께하는 이곳이."
민준은 미소 지었다.
"맞아요. 하느님은 우리를 에덴에서 내치신 게 아니에요. 보내신 거예요. 더 큰 사랑을 배우라고."
그날 밤, 민준은 하늘의 별을 보며 기도했다.
"하느님, 이제 알겠습니다.
에덴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불 칼을 세우신 이유를.
우리가 다시 돌아가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신 게 아니라,
에덴 밖에서 진짜 삶을 배우라고 하신 거였네요.
땀 흘리고, 고통받고, 죽음을 마주하면서,
그 안에서 사랑하고, 희생하고, 서로 돌보는 법을 배우라고.
감사합니다. 서연을 보내주셔서.
그녀를 통해 이 모든 걸 배웠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지만,
당신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우리가 에덴을 잃었지만,
더 큰 에덴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멘."
민준은 생명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서연의 유골이 섞인 이 땅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에덴은 잃어버린 과거가 아니었다.
매일 만들어가는 현재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미래였다.
하느님과 함께.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창세기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