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1)

타락한 세상

by 이 범

타락한 세상
2025년 봄, 서울.
노준혁은 설계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또 뇌물 요구네."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그에게 오늘도 비리 제안이 들어왔다.
"노 소장님, 이렇게 하면 모두 윈윈입니다."
건설사 실장이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뇌물입니다."
"뇌물이라뇨. 협력비죠."
"아닙니다. 전 받을 수 없습니다."
"노 소장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세요? 다들 이렇게 합니다."
준혁은 봉투를 돌려줬다.
"저는 안 합니다."
실장이 웃었다.
"그럼 다음 프로젝트는 없다고 생각하세요."
"상관없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준혁은 피곤해 보였다.
"여보, 무슨 일 있어요?"
아내 수미가 물었다.
"또 프로젝트 하나 날렸어."
"왜요?"
"뇌물을 안 받아서."
수미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잘했어요.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에요."
"의로워서 뭐 해. 먹고살기 힘든데."
"그래도 떳떳하잖아요."
장남 성민이 방에서 나왔다.
"아빠, 제 등록금..."
"걱정 마. 어떻게든 마련할게."
"미안해요, 아빠."
"아니야. 네가 의사 되는 게 아빠 꿈이잖아."
차남 현우도 나왔다.
"아빠, 전 미대 그만둘까요?"
"왜?"
"돈 많이 드는데... 제가 취업해서..."
"안 돼. 넌 재능이 있어. 끝까지 해야지."
막내딸 지은이 울먹였다.
"아빠가 힘든 건 우리 때문이죠?"
준혁은 세 자녀를 안았다.
"아니야. 아빠가 세상과 안 맞아서 그래."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데, 아빠만 고집부리니까."
수미가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당신 아버지는 옳은 일 하시는 거예요."
"세상이 타락했지, 아빠가 틀린 게 아니에요."
그날 밤, 준혁은 성당에 갔다.
김신부가 제대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신부님."
"오, 준혁이.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신부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보게."
"의롭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무슨 뜻인가?"
"의롭게 살면 손해만 보는 것 같아서요."
김신부는 준혁을 제대 앞으로 불렀다.
"자네, 창세기 6장 읽어봤나?"
"노아 이야기요?"
"그래.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지."
"네."
"그때 세상이 어땠는지 아나?"
"타락했다고..."
"맞아.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신부는 성경을 펼쳤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타락했어. 뇌물, 부정, 폭력, 거짓말..."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아처럼 살아야지."
"노아처럼요?"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어. 세상이 타락해도, 그는 혼자서라도 의롭게 살았지."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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