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도의 방주

홍수 속의 구원

by 이 범


배경 및 인물 소개
조선 고종 3년(1866년), 병인박해.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
주인공:
노아담(盧亞淡, 60세): 천주교 신자, 옹기장이
안마리아(韓瑪利亞, 57세): 아담의 아내
노 셈이(32세): 장남
노함이(29세): 차남
노야벳(26세): 삼남
며느리들과 손주들
김베드로 신부(金伯多祿, 55세): 프랑스인 신부

박해의 그림자
병인년 봄.
경상도 산골 마을에 핏빛 바람이 불어왔다.
"천주교도들을 잡아라!"
포졸들이 마을을 뒤졌다.
"서학쟁이들, 다 잡아 죽여야 한다!"
노아 담은 산속 움막에 숨어 있었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장남 셈 이가 물었다.
"괜찮다.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아담은 60세의 나이에도 정정했다. 평생 옹기를 구워 살았고, 10년 전 김베드로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아버님, 우리 피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차남 함 이가 물었다.
"어디로 가겠느냐? 온 나라가 천주교도를 죽이는데."
"그럼 배교하시죠. 목숨이 중요합니다."
"함아!"
아담이 아들을 꾸짖었다.
"목숨보다 영혼이 중요하다. 잊었느냐?"
"죄송합니다."
그날 밤, 아담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천주께서 말씀하셨다.
"아담아."
"네, 주님."
"큰 환난이 올 것이다."
"박해 말씀이십니까?"
"그것뿐이 아니다. 하늘에서 물이 쏟아질 것이다."
"비 말씀입니까?"
"홍수다. 사십일 동안 쏟아져, 이 땅을 쓸어버릴 것이다."
"주님..."
"너는 큰 배를 만들어라. 방주를."
"어디에 만듭니까?"
"뒷산 계곡에. 내가 가르쳐주겠다."
꿈에서 깬 아담은 땀범벅이었다.
"여보, 무슨 꿈꾸셨어요?"
아내 마리아가 물었다.
"천주께서... 방주를 만들라 하셨소."
"방주요?"
"큰 홍수가 온답니다. 사십일 동안."
마리아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럼 만들어야지요."
"하지만 포졸들이 우릴 찾고 있소. 큰 배를 만들면 들킬 텐데..."
"천주께서 명하셨으면 순명해야지요."

방주를 짓는 신앙인들
다음 날부터 아담은 방주를 짓기 시작했다.
뒷산 깊은 계곡.
나무를 베고, 틀을 짰다.
"아버님, 이게 정말 필요한 겁니까?"
셈 이가 의심했다.
"천주께서 명령하셨다."
"하지만 여긴 산골입니다. 홍수가 어떻게 여기까지..."
"천주께서 하시면 되느니라."
삼남 야벳이 말했다.
"저는 아버님을 믿습니다. 천주를 믿습니다."
"고맙구나, 야벳아."
석 달이 지났다.
방주의 기초가 세워졌다.
포졸들이 산을 뒤지고 있었다.
"천주교도들 어디 숨었나!"
"찾아내서 다 죽여라!"
어느 날, 김베드로 신부가 찾아왔다.
"아담 형제."
"신부님! 여기는 위험합니다."
"괜찮네. 자네를 봐야 했네."
"무슨 일이십니까?"
"천주께서 내게도 말씀하셨네. 큰 홍수가 온다고."
"신부님도 들으셨습니까?"
"그렇네. 그리고 자네가 방주를 짓는다는 것도."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지."
김신부도 방주 짓는 일에 합류했다.
일 년이 지났다.
방주가 거의 완성되었다.
길이 50척, 너비 10척, 높이 8척의 큰 배.
마을 사람들이 구경 왔다.
"저게 뭐야?"
"미친놈들이 산에서 배를 짓네."
"천주교도들, 정말 미쳤구나."
하지만 아담은 묵묵히 일했다.
병인년 2월 17일.
방주가 완성되었다.
"천주님, 감사합니다."
아담의 가족이 방주 앞에서 기도했다.
"명령하신 대로 다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다시 꿈을 꾸었다.
"아담아."
"네, 주님."
"이제 너는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언제입니까?"
"이레 후면 비가 시작된다."
"알겠습니다."
"짐승들도 데려가거라.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홍수의 시작
이레째 되는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동물들이 방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소 일곱 쌍.
양 일곱 쌍.
염소 일곱 쌍.
"정결한 짐승들이로구나."
아담이 말했다.
돼지 한 쌍.
개 한 쌍.
고양이 한 쌍.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
새들도 날아왔다.
비둘기, 참새, 까치...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것 봐라! 동물들이 배로 들어간다!"
"귀신 들린 것 아냐?"
"아니면 정말 큰일이 나는 건가?"
포졸들도 왔다.
"저게 뭐냐?"
"천주교도들이 배를 지었습니다."
"산에서 배를? 미친놈들!"
"잡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지켜보자. 뭔가 이상하다."
그날 저녁.
아담은 가족을 불렀다.
"얘들아, 이제 들어가야 한다."
"지금입니까?"
"그렇다. 천주께서 명령하셨다."
셈 이와 며느리, 손주들.
함이 와 며느리, 손주들.
야벳과 새 아내.
김베드로 신부.
총 열여덟 명이 방주에 올랐다.
"아버님, 다른 사람들은요?"
야벳이 물었다.
"천주께서 부르시는 사람만 탈 수 있느니라."
"하지만..."
"기도하거라. 그들을 위해."
마을 사람 하나가 달려왔다.
"노영감! 나도 태워주시오!"
"왜 타려 하십니까?"
"동물들도 다 타는데 사람이 못 탈 이유가 있소?"
"천주를 믿으십니까?"
"천주? 그게 뭔 소리요! 그냥 태워주시오!"
아담은 고개를 저었다.
"믿음 없이는 탈 수 없습니다."
"이 사기꾼! 혼자만 살려고!"
그 사람은 화를 내며 갔다.
마을 과부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노영감님, 저 좀 태워주십시오."
"왜 타시려 합니까?"
"제가... 천주교 도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진심입니까?"
"네! 천주님, 저를 받아주소서!"
아담은 김신부를 보았다.
"신부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세례를 줍시다."
김신부는 계곡 물로 여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마르타, 나는 너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감사합니다!"
마르타도 방주에 올랐다.
총 열아홉 명.
"아버님, 이제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셈 이가 말했다.
"그래. 문을 닫자."
아담이 무거운 문을 닫으려 할 때.
바람이 불었다.
"주님께서 닫으신다."
김신부가 말했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주님께서 노아 뒤로 문을 닫아주셨다..."
아담이 성경 구절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하늘이 열렸다.
우르릉!
천둥이 쳤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다!"
마을 사람들이 소리쳤다.
처음엔 보통 비였다.
하지만 점점 거세졌다.
폭우.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
김신부가 성경을 읽었다.
땅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계곡의 샘이 터졌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졌다.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물이 차오른다!"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산으로 올라가자!"
"도망쳐!"
하지만 물은 더 빨랐다.
방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떴다!"
야벳이 외쳤다.
"정말 뜨네요!"
방주는 물 위를 떠다녔다.
밖에서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문 열어주세요!"
아담은 눈물을 흘렸다.
"천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아담 형제."
김신부가 다가왔다.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네, 신부님."
방주 안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천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밖의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물은 계속 차올랐다.
산들을 덮었다.
"온 하늘 아래 높은 산들을 모두 뒤덮었다..."
김신부가 계속 성경을 읽었다.
열흘이 지났다.
스무날이 지났다.
사십 일이 지났다.
세상은 물에 잠겼다.
방주 밖의 모든 생명은 죽었다.
사람도, 짐승도, 새도.
"땅에 사는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다..."
오직 방주 안의 열아홉 명만 살아남았다.

새로운 시작
백오십 일이 지났다.
물이 천천히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님, 저기 땅이 보입니다!"
셈 이가 창문으로 외쳤다.
"정말이냐?"
방주가 어느 산봉우리에 머물렀다.
"천주께서 우리를 살리셨구나."
아담이 무릎을 꿇었다.
40일을 더 기다렸다.
물이 많이 빠졌다.
아담은 비둘기 한 마리를 내보냈다.
비둘기가 돌아왔다. 발에 아무것도 없었다.
7일 후 다시 내보냈다.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땅이 마르기 시작했다!"
또 7일 후 비둘기를 내보냈다.
이번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나가도 되겠구나."
아담이 문을 열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옛 마을은 사라지고, 깨끗한 땅만 남았다.
"나오십시오, 모두."
열아홉 명이 방주에서 내렸다.
동물들도 한 쌍씩, 일곱 쌍씩 나갔다.
아담은 제일 먼저 제단을 쌓았다.
정결한 짐승 중 양 한 마리를 제물로 드렸다.
"천주님, 감사하나이다."
"저희를 구원해 주셔서."
"새 생명을 주셔서."
김신부가 미사를 드렸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
"이 무지개가 내 언약의 표시다."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일곱 색깔.
"와..."
사람들이 감탄했다.
"천주의 약속이시다."
그날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
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가축을 키웠다.
아담은 마을 이름을 지었다.
"신촌, 새 마을."
"천주께서 새로 만드신 마을이니까."
일 년이 지났다.
신촌에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벳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요?"
"생명이라 하자. 천주께서 주신 새 생명이니까."
마르타도 재혼하여 딸을 낳았다.
"이름을 은총이라 하겠습니다. 천주의 은총으로 살았으니까."
5년이 지났다.
신촌은 작은 공동체가 되었다.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여기가 신촌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저희는... 다른 마을에서 왔습니다."
"병인박해 때 가족을 다 잃었습니다."
"천주교도이신가요?"
"네! 저희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그들을 맞아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천주교도의 마을입니다."
신촌은 점점 커졌다.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도들이 모여들었다.
십 년이 지났다.
아담은 이제 칠십 세.
손주가 스무 명이 넘었다.
어느 안식일, 온 마을이 모여 미사를 드렸다.
아담이 증언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육백 세가 되던 해에 큰 홍수를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육백 세는 성경 속 노아의 나이였다.
"농담입니다. 육십 세였죠."
"그때 천주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라고."
"저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산골에 웬 홍수? 웬 방주?"
"하지만 만들었습니다. 천주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리고 이레 후에 정말 비가 내렸습니다."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세상은 물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방주 안의 우리는 살았습니다."
아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형제자매 여러분."
"천주께서 명령하시면 순명하십시오."
"이해하지 못해도, 믿기 어려워도."
"순명하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병인박해도 그랬습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셨습니다."
"배교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교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홍수 후에 새 땅을 주셨듯이."
"박해 후에 새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주님."
모두가 함께 기도했다.
"감사하나이다."
"저희를 구원해 주셔서."
"새 생명을 주셔서."
"아멘."


에필로그 - 대대로 전하는 이야기
50년 후.
신촌은 큰 마을이 되었다.
천주교도 백여 명이 모여 살았다.
아담은 백십 세로 선종했다.
그의 장례 미사에서 김신부(이제 백오 세)가 강론했다.
"아담 형제는 현대의 노아였습니다."
"천주께서 명령하시자, 순명했습니다."
"방주를 지으라 하시니 지었습니다."
"들어가라 하시니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천주의 명령에 순명하는 것."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아담의 증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럼. 증조할아버지께서 방주를 지으셨지."
"신기해요. 산골에 홍수라니."
"천주께서 하시면 되느니라."
"저도 할아버지처럼 될래요."
"어떻게?"
"순명하는 사람요. 천주께."
"잘 생각했구나."
그 아이는 자라서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아담의 이야기를 대대로 전했다.
"병인년에 큰 박해가 있었다."
"그리고 큰 홍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의인이 있었다."
"그가 천주께 순명하여 방주를 지었다."
"그래서 구원받았다."
"우리도 순명하자."
"천주의 뜻에."
"끝까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때, 땅에 홍수가 났다.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노아 뒤로 문을 닫아주셨다."
- 창세기 7:6-16
순명은 쉽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 명령.
믿기 어려운 약속.
하지만 순명하는 자는 구원받는다.
노아는 순명했다.
아담도 순명했다.
그래서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우리도 순명하자.
천주의 뜻에.
박해 속에서도.
환난 속에서도.
그것이 구원의 길이다.
아멘.

월, 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