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실제
물뫼산 은밀한 모임
새벽 4시, 이산갑의 출발
10월 어느 날 새벽, 이산갑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산감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산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네, 산돌아. 혹시 일본 경찰이 찾아오면..."
"걱정 마십시오. 산감님께서 병환으로 누워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이산갑이 산돌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우리 함평이 씨 문중의 중요한 날이네. 조상님들께 제를 올리는 날이지."
"예, 알고 있습니다. 신사참배는 강요해도, 우리 조상님께 제사 지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조심해야 하네."
이산갑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물뫼산 중턱, 은밀한 집결지
물뫼산 중턱의 한 작은 사당.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산갑 종손 오셨습니까?"
한 노인이 이산갑을 맞이했다.
"이청로(李淸魯)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오, 산갑."
이청로는 함평이 씨 종친회의 원로였다. 팔십이 넘은 고령이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요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참으로 개탄스럽소."
"예, 어르신."
"신사참배라니... 우리 조상님들께 제사도 제대로 못 지내게 하다니..."
이청로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은밀히 모인 것 아니겠습니까?"
새벽이 밝아오기 전, 삼십여 명의 종친들이 모였다.
함평, 영광, 장성, 나주... 전라도 각지에서 모인 함평이 씨 후손들이었다.
"다들 무사히 오셨군요."
이산갑이 종친들을 둘러보았다.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남자부터 여자까지. 모두 조상을 향한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산갑, 요즘 명륜학당은 어떠한가?"
한 중년 종친이 물었다.
"어렵습니다, 종형. 일제의 감시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계속하고 있지?"
"예.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것을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종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