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신의흔적(24)

청소부 아주머니의 노래

by 이 범



새벽 5시, 대형 오피스 빌딩. 청소부 미숙은 걸레를 들고 1층 로비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60세의 나이에도 매일 이 일을 한다. 허리는 아프고 무릎은 시큰거렸지만, 쉴 수 없었다.
남편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사업 실패로 빚만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 손자는 시골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미숙은 손자 양육비를 보내기 위해 이 일을 했다.
청소를 하면서 미숙은 노래를 불렀다. 찬송가였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힘들 때마다 찬송가가 유일한 위로였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나를 부르는 소리라..."
미숙의 목소리는 텅 빈 로비에 울려 퍼졌다. 맑고 고요했다. 60년 세월이 묻어있는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어느 날 새벽, 15층을 청소하는데 불이 켜진 사무실이 있었다. 들여다보니 젊은 여자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미숙은 문을 노크했다.
"손님, 괜찮으세요?"
여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앞에는 빈 소주병이 널려 있었다.
"누구세요?"
"저는 청소하는 사람이에요. 걱정돼서요."
여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 좀 혼자 있게 해 주세요..."
하지만 미숙은 들어가서 여자 옆에 앉았다.
"혼자 있으면 더 힘들어요. 제가 있어줄게요."
여자는 미숙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낯선 청소부 아주머니. 하지만 그 눈빛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회사에서... 잘렸어요. 3년 동안 밤낮없이 일했는데, 구조조정 1순위래요. 저는 뭐예요? 쓰고 버리는 부품이에요?"
미숙은 여자의 손을 잡았다.
"아니에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소중하면 왜 버려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이제 직장도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숙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 이야기 들어줄래요?"

미숙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손자와도 떨어져 살아야 했던 이야기. 60세에 청소부가 되어 무릎 꿇고 바닥을 닦는 이야기.
"처음엔 너무 창피했어요. 대학도 나왔고, 남편이 살아있을 땐 그럭저럭 살았거든요. 근데 60세에 걸레질을 해야 한다니. 죽고 싶었어요."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어떻게 버티셨어요?"
"노래요."
"노래요?"
미숙은 미소 지었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청소하면서. 그러다 깨달았죠. 내가 이 바닥을 닦으면,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내가 화장실을 청소하면, 누군가 기분 좋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내 일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다는 걸요."
미숙은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이 3년 동안 한 일이 헛되지 않아요. 그 일로 누군가 도움을 받았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어요."
여자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주머니는... 신을 믿어요?"
"네.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이 아주머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데도요?"
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어요. 매일 아파요. 근데요, 하나님이 저를 버리신 게 아니에요. 오히려 이 자리에 보내주셨어요. 오늘 당신을 만나게 하려고요."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숙은 여자를 안아줬다.
"울어요. 실컷 울어요. 그리고 내일 다시 시작해요. 끝이 아니에요. 새로운 시작이에요."
한참을 울던 여자가 물었다.
"아주머니... 노래 불러주실 수 있어요? 그 찬송가요."
미숙은 고개를 끄덕이고 노래를 불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여자는 미숙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울었다. 새벽 빌딩의 텅 빈 사무실. 청소부 아주머니의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해가 떴다. 여자는 일어나 얼굴을 씻었다. 미숙은 여자에게 샌드위치와 우유를 건넸다.
"제가 아침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거예요. 드세요. 먹어야 힘이 나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이름이... 뭐예요?"
"전미숙이에요."
"저는 정수진이에요. 아주머니... 생명의 은인이세요."
"아니에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 당신을 도우신 거예요."
수진은 빌딩을 나가면서 돌아봤다. 미숙은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걸레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3개월 후, 수진은 새 직장을 구했다. 작은 회사였지만,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수진은 그 빌딩을 찾아갔다. 미숙을 만나기 위해. 하지만 미숙은 없었다. 다른 청소부에게 물었다.
"전미숙 아주머니 어디 계세요?"
"아, 미숙 씨? 한 달 전에 그만두셨어요.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요."
수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관리실에서 미숙의 연락처를 어렵게 알아냈다.
다음 날, 수진은 미숙의 집을 찾아갔다. 좁은 반지하 원룸이었다. 미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주머니!"
"어머, 수진 씨?"
수진은 미숙의 손을 잡았다.
"왜 연락 안 하셨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방에는 난방도 제대로 안 됐고,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수진은 그날부터 매일 미숙을 찾아갔다.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하고, 병원에 모셔다 드렸다.
"수진 씨, 미안해요. 제가 신세를 지네요."
"아니에요,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저를 살렸잖아요. 이제 제 차례예요."
수진은 미숙의 손자 이야기를 들었다. 고아원에 있다는.
"아주머니, 손자분 데려오세요. 같이 사세요."
"어떻게... 돈도 없는데..."
"제가 도울게요. 아주머니는 혼자가 아니에요."
수진은 회사 동료들에게 미숙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모금을 했다. 그리고 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름은 '노래하는 천사들'.
3개월 후, 미숙은 손자와 재회했다. 10살 준호. 할머니를 보자 울면서 안겼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준호야, 할머니도..."
수진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1년 후, 미숙은 건강을 회복했다. 수진과 동료들이 작은 집을 마련해 줬다. 미숙은 더 이상 청소부로 일하지 않았다. 대신 동네 경로당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쳤다.
"할머니들, 오늘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배워볼까요?"
"좋지!"
경로당에는 미숙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어르신들도 함께 불렀다. 노래는 슬픔을 위로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다.
어느 날, 수진이 경로당을 찾아왔다. 남자 한 명과 함께.
"아주머니,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제 약혼자예요."
미숙은 깜짝 놀라며 축하했다.
"어머, 정말? 축하해요!"
수진은 약혼자에게 말했다.
"여보, 이분이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분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없었을 거야."
약혼자는 미숙에게 깊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수진이 항상 아주머니 이야기를 해요. 제 장모님이나 다름없으세요."
결혼식 날, 수진은 미숙을 귀빈석에 앉혔다. 그리고 축가는 미숙이 불렀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하객들은 숙연해졌다. 미숙의 목소리에는 60년의 세월과 고난이,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믿음이 담겨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준호가 미숙에게 물었다.
"할머니, 사람들이 할머니를 천사래요. 맞아요?"
미숙은 손자를 안으며 웃었다.
"천사는 아니야. 할머니는 그냥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야. 노래로, 말로, 행동으로."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커서 할머니처럼 될래요. 노래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
미숙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렇게 해라. 네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도우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일이란다."
그날 밤, 미숙은 작은 방에서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 삶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청소부로 일했지만, 그 속에서 당신의 일을 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했고, 그 영혼이 또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새벽 5시, 예전에 일하던 빌딩을 지나는 사람들이 가끔 말한다.
"이상해. 여기서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그래. 청소부 아주머니가 부르던 노래 같아."
미숙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그 빌딩의 벽에, 복도에, 계단에 스며들어 지금도 울려 퍼진다.
신은 청소부의 노래 속에도 계시고, 무릎 꿇고 바닥을 닦는 겸손 속에도 계신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노래를 잃지 않는 믿음 속에도 계신다.

월, 화, 수,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