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집에 두고, 사람을 데려오다
무인은 집을 늦게 짓는다
이성준이 첨사로 임명되던 날,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관에게 벼슬이란
영광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책임은 늘 집보다 먼저였다.
“혼인 생각은 없느냐.”
상관이 물었을 때,
성준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家(가)는 칼보다 늦게 세워야 합니다.”
그해 가을,
성준은 진주에서 올라온 이주민 무리를 단속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윤현중을 만났다.
몰락한 양반, 그러나 무너지지 않은 등허리.
윤현중의 셋째 딸 윤화정은
말수가 적었고, 눈이 깊었다.
그녀는 성준의 칼을 보지 않고
그의 손을 보았다.
“이분은 사람을 베지 않는 손이구나.”
그날 이후,
성준은 자주 그 집을 찾았다.
몰락한 가문의 딸
윤현중은 말했다.
“우리는 이미 졌습니다.
그러나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진주의 집은 불탔고,
족보는 찢겼으며,
벼슬길은 끊겼다.
그러나 윤화정은
몰락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가문은 사람이 잇는 것입니다.”
성준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혼인은 조용히 치러졌다.
대단한 혼례도, 축하도 없었다.
그러나 성준은 알았다.
이 여인은 전장을 함께 건널 수 있다.
그날 밤,
성준은 처음으로 칼을 방 한편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