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칼을 내려놓다
늦은 저녁, 칼을 내려놓다
마당의 감나무가 더는 열매를 맺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성준은 그날도 마루 끝에 앉아
칼을 닦고 있었다.
닦는다고 해서 더 날카로워질 것도 없는 칼이었다.
이미 전장에서는 물러났고,
칼은 이제 벽에 걸린 물건에 불과했다.
윤화정은 부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칼을 닦는 날은
대개 비가 오기 전이거나,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다.
“이제 그만두셔도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헝겊으로 칼등을 한 번 더 훔쳤다.
武器者 非用於老
병기는 노년에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은
그가 젊은 날 스스로에게 썼던 글귀였다.
이제야 그 뜻이 몸으로 와닿았다.
밤이 되자
관절이 먼저 날씨를 알렸다.
성준은 잠자리에서 몇 번이나 몸을 돌렸다.
“오늘은 전장 꿈을 꾸셨나요.”
화정이 물었다.
“아니오.”
“오늘은 집이 나오더이다.”
그 말에 화정은 웃었다.
젊을 때는 늘 전장을 꾸던 사람이었다.
“이상하지요.”
성준이 낮게 말했다.
“싸움이 끝난 뒤에야
집이 꿈에 나옵니다.”
화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이 집을
전장처럼 지켰기 때문이겠지요.”
며칠 뒤,
막내딸 채연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글씨는 단정했고, 문장은 짧았다.
아버지의 칼은
저에게 늘 ‘멈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준은 편지를 접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침묵만 남긴 것 같소.”
화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당신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가르치셨지요.”
言少而義重
말은 적되, 뜻은 무겁다.
그 말은
화정이 평생 품고 살던
남편에 대한 평가였다.
어느 날 아침,
성준은 칼을 벽에서 내려
상자에 넣었다.
“이제 정말 내려놓으시는 겁니까.”
화정의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니오.”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오.”
그녀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
무거웠다.
그러나 그 무게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책임이었다.
그해 가을,
두 사람은 나란히 마루에 앉아
낙엽을 보았다.
“우리는
나라를 구한 적이 없소.”
성준이 말했다.
“하지만,”
화정이 이었다.
“무너지지 않게는 했지요.”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夫婦者 同途而行
부부란 같은 길을 걷는 자이다.
그날 저녁,
마당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평생 지켜온
가장 큰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