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아내
윤화정의 기록에서 보면
나는 이미 무너진 집에서 왔다
나는 진주에서 왔다.
정확히 말하면, 진주에서 쫓겨나듯 떠났다.
아버지 윤현중은 늘 말씀하셨다.
“家門은 불타도,
사람의 등은 바로 서야 한다.”
집은 사라졌고,
족보는 흩어졌으며,
우리 삼 자매의 혼사는 끊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 앞에
칼을 찬 사내가 나타났다.
이성준.
그의 칼은 번들거렸으나
눈은 번들거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무관이 아니라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칼을 든 사내와 혼인하다
그는 나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짓도 없었다.
“전장에 자주 나갑니다.”
“늦게 돌아옵니다.”
“살아서 돌아온다는 약속은 못합니다.”
이 말이
청혼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이미 모든 걸 잃은 사람은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혼례는 조촐했다.
비단도, 악공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칼을 방 한편에 두었다.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은 집 안에서 싸우지 않겠구나.
아이를 낳고, 나라를 키우다
장남 기영이 태어났을 때
남편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늘 집 밖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안고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아이는 이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키우자.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는 아이를 안겨주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칼보다 먼저 무엇을 가르치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止戈爲武
창을 멈추는 것이 무다.
나는 그 말을
평생 붙잡고 살았다.
두 아들과 한 딸
기채는 불 같았다.
기영은 돌 같았다.
채연은 물 같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딸에게 글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웃으며 답했다.
“世上은 딸에게
늘 먼저 닥칩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칼보다 무서운 것을 가르쳤다.
침묵,
부끄러움,
그리고 책임.
남편은 그 사실을
묻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았으나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지켰다.
무관의 아내로 늙어간다는 것
남편의 어깨는
점점 낮아졌다.
칼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었으나
그 무게는 예전과 달랐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는 좋은 무인이었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돌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
나는 처음으로 혼자 울었다.
婦人之道 非在內也
여인의 도는 안에만 있지 않다.
나는 무관의 아내로 살았으나
늘 전장에 서 있었다.
다만 칼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