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58)

장남 이기영 - 書中有路 (책 속에 길이 있다)

by 이 범

1815년, 무인 집안의 장남
순조 15년(1815년), 이기영은 무인 이성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해는 조선이 겉으로는 평화로웠으나, 안으로는 세도정치의 폐해가 깊어지던 때였다.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장악하고,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아버지 성준은 젊은 시절 변방의 오랑캐를 막아낸 무인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당쟁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아버님, 이 아이가 우리 집안을 일으킬 것입니다."
산파가 갓난아이를 안고 말했을 때, 성준은 아들의 작은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기영은 다섯 살에 『사자소학』을 떼었다.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또박또박 글을 읽는 아들을 보며 성준은 흡족해했다.



"이 아이는 문(文)의 길을 갈 것이오."
어머니 윤화정에게 말했다.
"나는 칼로 나라를 섬겼으나, 이 아이는 글로 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오."




영산 서당
열 살이 된 기영은 영산 서당에 들어갔다.
훈장 이방주는 오십이 넘은 학자였다.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으나, 학식만큼은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이기영."
"예, 훈장님."
"『논어』의 첫 구절을 읽어 보거라."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기영의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
"뜻을 풀이해 보거라."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런데 기영아, 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이 군자인가?"
기영은 잠시 생각했다.
"...군자는 자신의 도를 행할 뿐, 남의 인정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열 살에 벌써 이런 깨달음이라니. 네 앞날이 기대되는구나."
그날 밤, 기영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군자란 무엇입니까?"
성준은 마루에 앉아 칼을 닦고 있었다.
"군자란 의(義)를 지키는 사람이다."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할 수 있는 것.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해도 말이다."
기영은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1832년, 임술민란의 소식
기영이 열일곱 살 되던 해, 전국에서 민란의 소식이 들려왔다.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났다오!"
"탐관오리들을 응징했다지!"
"백성들이 굶주려 죽어가는데, 관리들은 뇌물만 챙긴다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이방주는 서당에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 사태를 어찌 생각하느냐."
한 양반 자제가 대답했다.
"천민들이 분수를 모르고 난동을 부린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이방주는 기영을 보았다.
"기영아,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기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인이 보기에, 백성이 난을 일으키는 것은 살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맹자』에 이르기를,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살 길을 주지 않으면서, 어찌 그들의 충성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서당이 술렁거렸다.
"이기영! 그것이 양반 자제가 할 말이냐!"
"백성의 편을 들다니!"
그러나 이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영의 말이 옳다. 『대학』에 이르기를, '민위방본(民爲邦本)'이라 하였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날 이후, 기영은 백성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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