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59)

훈장

by 이 범

1836년, 과거 시험
기영이 스물하나 되던 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거 시험을 권했다.


"기영아, 이제 과거에 응시해야 하지 않겠느냐."
"... 아버님, 소자는 과거에 뜻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양반 자제로 태어나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자가 보기에, 지금의 과거 제도는 썩었습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자가 아니라, 시문(詩文)이나 잘 짓는 자가 뽑힙니다."
성준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 네 뜻이 무엇이냐."
"소자는 이곳에 머물며 백성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백성을?"
"예. 양반의 자제뿐 아니라,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에게도 글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 믿습니다."
성준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참으로 담대하구나. 좋다. 네 뜻대로 해 보거라.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라."
"무엇입니까?"
"양반의 기개는 벼슬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의를 지키는 데 있다. 네가 높은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떳떳하게 의를 행한다면 그것이 곧 양반의 도리다."
"명심하겠나이다."

1840년, 영산 서당의 새 훈장
기영이 스물다섯 되던 해, 이방주 훈장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이제 서당은 어찌 되는 것이오."
"후임 훈장이 와야 할 텐데..."
근심 어린 목소리들이 오갔다.




마을의 유력한 양반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이기영 도령을 추천하고자 하오."
박 진사가 말했다.
"이기영? 그 젊은이를?"



"나이는 젊으나 학식은 출중하오. 더구나 이방주 선생께서 생전에 그를 후계자로 점찍으셨소."
"하나 과거에도 급제하지 않은 자를 훈장으로 삼는다는 것이..."
"과거가 무엇이오? 요즘 과거 급제자들을 보시오. 글이나 외울 줄 알았지,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자가 몇이나 되오?"
결국 기영이 영산 서당의 훈장이 되었다.
첫 수업 날, 기영은 제자들 앞에 섰다.
"너희는 왜 글을 배우느냐?"
아이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아이가 대답했다.
"과거에 급제하면 무엇을 하려느냐?"
"... 벼슬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그것이 전부냐?"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영이 말했다.
"글을 배우는 이유는 자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바로잡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것이 선비의 도리다."
기영은 칠판에 크게 썼다.




"民爲邦本 本固邦寧"
민위방본 본고방녕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너희가 장차 양반이 되거든, 이 말을 잊지 마라."


1844년, 신분을 넘어선 교육
기영이 스물아홉 되던 해, 큰 논란이 일었다.
기영이 상민의 자식을 서당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 훈장, 이게 무슨 짓이오!"
양반들이 몰려왔다.




"상놈 자식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앉혔다니!"
"예법을 모르시오?"
기영은 차분히 대답했다.




"어른들께 여쭙겠습니다. 『대학』에 이르기를, '자천자이지서인(自天子以至庶人) 일시개이수신위본(一是皆以修身爲本)'이라 하였습니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 하였으니, 글을 배우는 데 어찌 귀천이 있겠습니까?"
"하나 그것은..."
"공자께서도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가르침에는 부류가 없다 하셨습니다."
양반들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한 양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전의 말씀을 가져다 억지를 쓰는구나! 상놈은 상놈이고 양반은 양반이다! 이것이 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법도다!"
기영은 그 양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최 영감, 영감께서는 진정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
"영감의 선친께서도 양반이셨고, 선친의 선친께서도 양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놈이 감히!"
"저는 묻고 있습니다. 양반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태어날 때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양반입니까? 아니면 양반다운 덕을 갖춘 자가 양반입니까?"
사랑채는 조용해졌다.
"제가 보기에, 진정한 양반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자입니다. 자신만 편하게 살면서 백성의 고통은 외면하는 자는, 비록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양반이 아닙니다."
최 영감은 얼굴이 벌게져 돌아갔다.
그러나 몇몇 양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훈장 말이... 일리가 있소."
"세상이 변하고 있소. 우리도 변해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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