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62)

고종의 즉위

by 이 범

1863년, 고종 즉위와 대원군 집권
기영이 마흔여덟 되던 해,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이 즉위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으로 권력을 잡았다.
"대원군이 개혁을 단행한다지?"
"서원을 철폐한다더군."
"양반들도 군포를 내야 한다지."
마을은 술렁거렸다.
기영은 대원군의 개혁을 주시했다.
"호포제...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한다..."
기영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대원군의 개혁을 보거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양반의 특권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양반이라고 해서 무조건 면세를 받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양반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마을의 양반들은 분노했다.
"이게 무슨 일이오!"
"양반이 상놈과 똑같이 군포를 낸다니!"
"이것은 양반을 모욕하는 것이오!"
기영은 그들에게 말했다.
"어른들,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양반의 특권은 이제 지킬 수 없습니다. 대신 양반의 덕을 보여야 합니다."
"무슨 소리냐!"
"양반이 먼저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우리를 존경합니다. 특권을 주장하기만 하면, 백성들은 우리를 원망할 뿐입니다."

書中有路, 世上有責
— 1863년, 변하는 세상 앞에 선 선비 이기영 —
왕이 바뀌고, 공기가 달라지다
철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은 초겨울 바람처럼 마을을 스쳐 갔다.
상복을 입은 사람보다 술상을 차린 이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왕의 죽음은 늘 먼 일이었고, 그 다음 왕의 이름은 더 멀었다.
1863년, 고종 즉위.
그리고 흥선대원군 집권.
“대원군이 실권을 쥐었다더라.”
“서원을 없앤다지?”
“호포제라던가… 양반도 군포를 낸다 하더군.”
사람들은 낮게 수군거렸으나, 말끝마다 불안이 묻어 있었다.
이기영은 마루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마흔여덟.
머리카락엔 이미 백발이 섞였고, 글을 읽는 눈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또렷했다.
時變而道不變
(시대는 변해도 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그날, 그 문장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개혁의 이름으로 다가온 파문
며칠 뒤, 군포를 징수하러 나온 아전이 마을 어귀에 섰다.
상놈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호적에 ‘양반’이라 적힌 집들에도 문서가 전달되었다.
“양반이 군포를 낸다?”
마을의 유력한 양반 최노인이 상을 엎었다.
“이건 천지가 뒤집힌 일이오!”
“吾輩는 士大夫요! 어찌 常民과 같단 말이오!”
분노는 빠르게 번졌다.
그날 밤, 사랑채에는 양반들이 모였다.
분노, 모욕,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들.
“이건 대원군의 폭정이오!”
“서원도 없애고, 이제는 군포까지!”
그 자리에 이기영도 있었다.
말없이 차를 따르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른들.”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방 안이 고요해졌다.
“이것은 모욕이 아니라, 시험입니다.”
“시험?”
“무슨 시험이란 말이오!”
이기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양반의 특권이 줄어드는 시험이 아니라,
양반의 덕이 진짜인지 묻는 시험입니다.”


양반의 이름을 다시 묻다
그의 말에 노기가 치솟았다.
“네놈이 무슨 소리를!”
“양반이 먼저 고개를 숙이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이기영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양반은 글을 읽는 사람입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늘 말하던 문장을 꺼냈다.
先義而後利
(의로움을 앞세우고, 이익은 뒤에 둔다)
“지금 백성들은 굶고 있습니다.”
“삼정이 문란하여 군포는 두 번, 세 번 걷히고,
곡식은 중간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면세를 주장하면,
백성의 눈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이겠습니까?”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저 특권만 지키려는 무리로 보일 것입니다.”
최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군포를 내야 한다는 것이냐?”
이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 말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양반이 먼저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일 때,
백성은 비로소 우리를 존경할 것입니다.”

글로 살아남는 길
며칠 뒤, 이기영은 제자들과 함께 군포를 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였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미쳤다더라.”
“양반 체면을 스스로 버렸대.”
그러나 며칠 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몇몇 상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왔다.
군포를 운반하고, 장부를 정리했다.
“선생님이 먼저 내셨다 들었습니다.”
“그럼 우리도 속이지 않겠습니다.”
이기영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書中有路
책 속에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알았다.
그 길은 책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에도 있다는 것을.
그날 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士者 非以免責而存
(선비란 책임을 피함으로써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대원군의 개혁은 거칠고 많은 반발을 불렀다.
그러나 그 파도 속에서,
이기영은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았다.
칼의 시대가 저물고,
붓의 책임이 무거워지던 때.
그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제자들을 키웠다.
특권이 아닌 의무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선택한,
시대에 맞서는 선비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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