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
1871년, 신미양요
기영이 쉰여섯 되던 해, 이번에는 미국 함대가 침공했다.
신미양요였다.
"또 서양 오랑캐가 왔다!"
"이번에는 미국이라지!"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와는 화친하지 않는다!"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기영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문을 닫고 있기만 하면...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조선이 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우리만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門 앞에 선 나라
— 신미양요, 닫힌 문 앞에서 —
바다에서 들려온 소식
기영이 쉰여섯이 되던 해, 바다는 다시 불길한 소식을 실어왔다.
1871년, 신미년(辛未年).
“서양 오랑캐가 강화도에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미국이라지!”
“포를 쏘고, 군함이 성벽을 부쉈다더라!”
소문은 늘 과장되었으나, 공포만은 과장이 아니었다.
강화 앞바다에 나타난 검은 군함들은, 이제 더 이상 소문 속의 존재가 아니었다.
기영은 바다를 보지 않았으나, 바다의 냄새를 느꼈다.
그것은 화약과 쇠, 그리고 알 수 없는 시대의 냄새였다.
흥선대원군은 단호했다.
척화(斥和).
“서양과 화친하지 말라!”
“그들의 말은 곧 침략이다!”
며칠 사이, 전국 곳곳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자는 나라를 판다)
돌에 새겨진 문장은 단순했고, 명확했다.
그러나 기영의 마음은 그 문장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옳음과 두려움 사이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오랑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아버지 이성준이 변방에서 맞섰던 적도, 늘 그렇게 불렸다.
夷狄者 禽獸也
(오랑캐는 짐승이다)
그 문장은 오래된 경전의 말이었다.
그러나 기영은 그 문장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짐승이 이렇게 멀리서 배를 타고 오는가.’
‘짐승이 이렇게 정교한 무기를 만드는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을 펼쳤으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攘外必先安內
(밖을 물리치려면 먼저 안을 다스려야 한다)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지금의 조선은 ‘안’이 다스려진 나라였는가.
삼정은 여전히 문란했고,
백성은 여전히 굶주렸으며,
양반은 아직도 특권과 체면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문을 닫고 버틴다는 것이,
과연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을까.
제자들 앞에 선 스승
며칠 뒤, 기영은 제자들을 불렀다.
서당 마루에 앉은 젊은 얼굴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스승님,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왜 저들은 바다를 건너 우리를 침범합니까?”
기영은 잠시 말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너희는 지금 역사의 문턱에 서 있다.”
“조선이 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이 선택이 너희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제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스승님께서는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기영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제자들 앞에서 침묵했다.
“…나도 모른다.”
그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흔들렸다.
“다만,”
그는 이어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우리가 문을 닫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는 척화비가 보이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을 닫는 것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생각까지 닫는 것은 죽음이다.”
닫힌 문 앞에서 남긴 말
신미양요는 결국 조선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미군은 물러갔고, 대원군은 더욱 강경해졌다.
척화비는 더 많이 세워졌다.
문은 더 굳게 닫혔다.
그러나 기영은 환호하지 않았다.
“이겼다”는 말이,
“버텼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拒戰可也 拒知不可
(싸움을 거부할 수는 있으나, 앎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서양 책을 몰래 구해 읽기 시작했다.
천문, 지리, 군사, 기계에 관한 이야기들.
비난받을 일이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서양을 배우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알기 위해 그들을 아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제자들에게 말했다.
기영은 끝내 개혁가도, 척화의 기수도 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기록자였고, 질문하는 자였다.
그리고 훗날,
문이 강제로 열렸을 때,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이미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書中有路
책 속에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은
책장을 넘어,
닫힌 문 앞까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