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원군실각
1873년, 대원군 실각
기영이 쉰여덟 되던 해, 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척족이 권력을 잡았다.
"대원군께서 물러나셨다오!"
"이제 민씨들이 권력을 잡는다지."
"또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것 아니오?"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기영도 우려했다.
'개혁이 중단되겠구나. 그리고 다시 부패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다시 흐려지는 물
— 1873년, 개혁 이후의 공백 —
물러난 사람, 남은 불안
기영이 쉰여덟 되던 해, 봄은 왔으되 공기는 무거웠다.
1873년, 계유년(癸酉年).
“대원군께서 물러나셨다오!”
“임금이 친정을 시작했다더군.”
“민씨 척족이 다시 권세를 잡는다지.”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말끝마다 불안이 달라붙었다.
기영은 마루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불과 십 년 남짓, 나라의 방향을 쥐고 흔들던 사내가 물러났다는 사실이
기쁘기보다는 허전하게 느껴졌다.
흥선대원군.
강압적이었으나 분명한 의지를 가진 인물.
그의 개혁은 거칠었고, 많은 원망을 샀으나
적어도 멈춰 있던 물을 흔들어 놓았다.
이제 그 손이 떠났다.
기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治亂 在人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사람이 바뀌면, 물은 다시 흐려질 수 있다.
예상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변화는 분명해졌다.
서원 철폐는 흐지부지되었고,
호포제는 느슨해졌으며,
민씨 일족의 친척들이 요직에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소.”
“세도는 다시 세도일 뿐이오.”
마을의 양반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군포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개혁의 기억은 빠르게 사라졌다.
기영의 제자 하나가 말했다.
“스승님, 이제 양반들도 다시 편해질까요?”
그 말에 기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편해진다는 것이 무엇이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편함이냐?”
제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며칠 뒤, 기영은 군현의 장부를 보았다.
군포는 다시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상민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法不行 則民不信
(법이 시행되지 않으면 백성은 믿지 않는다)
그 문장이 뼈처럼 박혔다.
권력은 바뀌어도 병은 남는다
기영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대원군이 있었을 때도, 없을 때도
나라의 근본 병은 치유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는 권력이 바뀌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라.”
“권력의 얼굴이 바뀐다고 해서, 나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나라를 바꿉니까?”
기영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사람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대원군은 문을 닫아 나라를 지키려 했다.”
“민씨들은 문을 열되, 자신들을 위해 열 것이다.”
“그 사이에서 백성은 또 기다려야 한다.”
제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영은 책을 들어 보였다.
“기다리되, 준비해야 한다.”
“분노하되, 흐려지지 말아야 한다.”
忍而不屈
(참되 굴하지 말라)
남은 자의 선택
1873년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기영은 서당의 문을 닫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상민의 자식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양반만 글을 읽는 시대는 끝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그를 비웃었다.
누군가는 위험한 생각이라 경고했다.
그러나 기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政權은 易變하나, 學問은 永存한다
(정권은 쉽게 변하나, 학문은 오래 남는다)
대원군은 떠났고,
개혁은 멈추었으며,
부패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기영은 알았다.
이 모든 것은 끝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라는 것을.
세상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문을 닫은 나라 안에서,
생각만은 닫히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쉰여덟의 이기영이 선택한
마지막이자 가장 긴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