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1884년, 갑신정변
기영이 예순아홉 되던 해, 서울에서 정변이 일어났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정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삼일천하로 끝났다.
"개화파가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오!"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했다지!"
마을은 술렁거렸다.
기영은 슬펐다.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있었구나. 그러나 준비가 부족했다. 백성의 지지도 없이, 어찌 나라를 바꿀 수 있겠는가.'
三日之火
— 1884년, 너무 이른 불꽃 —
사흘 만에 식은 소식
기영이 예순아홉이 되던 해,
서울에서 들려온 소식은 유난히 급했다.
1884년, 갑신년(甲申年).
“개화파가 난을 일으켰다오!”
“김옥균이 궁을 장악했다더니, 삼일 만에 끝났대!”
“일본으로 달아났다지.”
사흘.
불꽃은 그보다 오래 타지 못했다.
마을은 술렁거렸고,
어떤 이는 통쾌해했고,
어떤 이는 두려워했다.
기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루에 앉아, 오래전부터 쓰던 벼루를 닦았다.
그 벼루에는 수십 년의 생각이 스며 있었다.
變而不成
(변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다)
그 네 글자가 마음을 짓눌렀다.
알던 이름들, 낯선 선택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기영은 그 이름들을 처음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들의 글이 떠돌았고,
서양의 제도와 학문을 논하는 문장들이 그의 손에도 들어왔다.
“급진적이로다.”
그는 그렇게 평가했었다.
그러나 그 ‘급진’ 속에 담긴 절박함을
이제야 또렷이 느꼈다.
“나라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저들은 알고 있었구나.”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이룰 수 있는 것은 달랐다.
民無所與 則政無所立
(백성이 함께하지 않으면 정치는 설 수 없다)
그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화파는 칼을 들지 않았으나,
권력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손에는 백성이 없었다.
제자와의 대화
그날 저녁, 제자 하나가 물었다.
“스승님, 개화파는 옳았습니까?”
기영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옳고 그름으로만 말할 수 없다.”
“그럼 실패는 왜 했습니까?”
기영은 천천히 답했다.
“너무 빨랐다.”
“그리고 너무 위에만 있었다.”
“나라를 바꾸려면,
먼저 백성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
“배고픈 자에게 제도는 공허하고,
배운 자만의 개혁은 위태롭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여전히 논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저들을 끌어안지 못한 개혁은,
결국 글 속에서만 존재한다.”
남겨진 질문
삼일천하.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말했지만,
기영에게 그것은 사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知變而不能待 其罪在急
(변화를 알되 기다리지 못한 죄는 조급함에 있다)
그러나 이어서 덧붙였다.
知變而不行 其罪在怯
(변화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죄는 비겁함에 있다)
그는 개화파를 비웃지 않았다.
그들의 실패를 조롱하지도 않았다.
다만 슬펐다.
“이 나라에는,
너무 늦게 깨닫는 자들과
너무 빨리 뛰어드는 자들만 있는 것인가.”
기영은 예순아홉의 몸으로
다시 책을 폈다.
이제 그의 글은
개혁을 외치지 않았다.
대신 기록했다.
언젠가 올 변화가,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書中有路
책 속에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안다.
그 길은 혼자서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사흘의 불꽃은 꺼졌으나,
질문은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늙은 선비가 끝까지 지키려 한
마지막 불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