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운동
1894년 봄, 고부 민란의 소식
기영이 일흔아홉 되던 해 초봄, 전라도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고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더군."
"또 민란이오?"
"이번엔 다르다네. 동학교도들이 주도한다지."
마을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기영은 서당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스승님,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라는 자가 백성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했답니다."
제자가 급히 보고했다.
"전봉준... 그가 누구냐?"
"동학의 접주라고 합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분노한 백성들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기영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병갑이 무슨 횡포를 부렸기에..."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만든다며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두었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착복했다고 합니다."
"..."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군수는 살찌고 있었답니다."
기영은 한숨을 쉬었다.
'또 탐관오리로구나. 민씨 정권이 들어선 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날 저녁, 기영은 아내 연화에게 말했다.
"부인,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소."
"무슨 일 말씀이신가요?"
"전라도에서 시작된 불씨가... 전국으로 번질 것 같소."
연화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서방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몸이 좋지 않으신데..."
"걱정하지 않을 수 없소. 이것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오.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오."
1894년 3월, 무장 기포
한 달 후, 더 큰 소식이 들려왔다.
"전봉준이 무장에서 다시 봉기했다오!"
"이번엔 규모가 크다던데!"
"수천 명이 모였다지!"
제자들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스승님, 동학군이 무장에서 기포했습니다!"
"기포?"
"예.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왜척양(斥倭斥洋)'을 내세우며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기영은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스승님, 안 됩니다! 몸이 아직..."
"괜찮다.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다."
기영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구체적인 요구가 무엇이냐?"
제자가 종이를 꺼냈다.
"폐정개혁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답니다."
기영은 종이를 받아 읽었다.
폐정개혁 12개조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불량한 유림과 양반은 징벌한다
횡포한 부호를 징벌한다
불량한 유생과 양반의 무뢰배를 징벌한다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천민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등권을 인정한다
청상과부의 재가를 허용한다
무명잡세를 폐지한다
관리 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왜와 내통하는 자는 엄벌한다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한다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한다
기영은 종이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이것은..."
"스승님?"
"이것은 혁명이다."
기영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것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다. 사회 전체를 바꾸려는 혁명이다."
제자들은 숨을 죽였다.
"신분제 폐지, 토지 개혁, 부패 척결... 이것은 내가 평생 꿈꾸던 것들이다."
기영은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마침내 백성들이 스스로 일어섰구나."
1894년 4월, 황토현 전투의 승리
동학군은 황토현에서 관군을 크게 물리쳤다.
"동학군이 이겼다오!"
"관군을 격파했다지!"
"전봉준 장군 만세!"
마을은 흥분에 휩싸였다.
기영의 장남 충헌이 찾아왔다.
"아버님, 들으셨습니까? 동학군이 승리했답니다!"
"들었다."
"아버님, 저는... 저도 합류하고 싶습니다."
기영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충헌은 예순이었다. 이미 백발이 성성했다.
"충헌아, 너는 이미 늙었다."
"하지만 아버님, 이것은 우리가 평생 바라던 일 아닙니까?"
"그렇다. 그러나..."
기영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너는 여기 남아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하지만..."
"충헌아, 전쟁에는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에는 경험 많은 자가 필요하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교육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충헌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1894년 5월, 전주성 점령
동학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전주성을 점령했다.
"전주성이 함락되었다오!"
"동학군이 전라도 전체를 장악했다지!"
"이제 한양으로 진격한다던데!"
마을은 긴장과 흥분으로 들끓었다.
기영은 차남 충기를 불렀다.
충기는 쉰하나로, 한양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와 있었다.
"충기야."
"예, 아버님."
"너는 한양에서 소식을 많이 듣지 않았느냐?"
"예, 들었습니다."
"조정의 반응이 어떠하더냐?"
충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정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공포?"
"예. 동학군이 한양으로 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민씨들은 이미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기영은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외세를 끌어들이겠구나."
"예?"
"조정은 스스로 동학군을 진압할 힘이 없다. 그렇다면 청나라나 일본에 도움을 청할 것이다."
"설마... 그런..."
"역사는 반복된다. 임오군란 때도 그랬지 않았느냐."
1894년 6월, 청일 양군의 개입
기영의 예상은 적중했다.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다.
그러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보냈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왔다오!"
"일본 군대도 온다던데!"
"이게 무슨 일이오!"
마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기영의 제자들이 모였다.
"스승님, 어찌 된 일입니까?"
"외세의 개입이다."
"하지만 동학군은 조선 백성 아닙니까? 왜 외국 군대를..."
"조정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백성의 봉기가 두려워서,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다."
기영은 분노했다.
"이것은... 이것은 나라를 파는 행위다!"
기영은 기침을 했다. 흥분한 탓에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스승님!"
제자들이 부축했다.
"괜찮다... 괜찮아..."
아내 연화가 달려왔다.
"서방님! 너무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부인... 나라가... 나라가 이 지경인데 어찌 가만히 있겠소..."
연화는 남편을 침대에 눕혔다.
1894년 6월, 전주 화약
동학군과 조정은 전주 화약을 맺었다.
동학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나고, 조정은 폐정개혁을 약속했다.
"화약이 맺어졌다오!"
"동학군이 물러난다지!"
"개혁이 이루어진다던데!"
처음에는 희망적인 소식처럼 들렸다.
그러나 기영은 달리 보았다.
"이것은... 속임수다."
"스승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정이 개혁을 약속했다는데..."
"조정을 믿을 수 있느냐? 그들이 진심으로 개혁할 것 같으냐?"
"..."
"이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1894년 7월, 청일전쟁의 발발
한 달 후, 기영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 땅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다오!"
"청나라와 일본이 싸운다지!"
"우리 땅에서!"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기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부인..."
"예, 서방님."
"이것이... 이것이 조선의 운명이오..."
"서방님..."
"우리는 약했소. 백성은 일어났으나, 나라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소. 외세는 우리의 약함을 틈타 들어왔소..."
기영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내가 평생 무엇을 했단 말이오..."
"서방님, 그런 말씀 마세요."
연화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서방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셨고, 그들에게 의로움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나라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서방님께서 가르친 제자들이 자라나면, 그들이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의 재봉기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우세해지자, 일본은 조선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동학군은 다시 봉기했다.
"전봉준이 다시 일어섰다오!"
"이번엔 일본을 몰아내려 한다지!"
제자들이 급히 보고했다.
"스승님, 동학군이 다시 봉기했습니다!"
기영은 힘없이 물었다.
"...명분이 무엇이냐?"
"'척왜(斥倭)'입니다. 일본을 몰아내겠다는 것입니다."
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옳은 일이다..."
"스승님, 동학군이 승리할 수 있을까요?"
기영은 한참을 침묵하다 대답했다.
"...어렵다. 일본군은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동학군은 죽창과 낡은 화승총으로 싸운다. 용기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럼..."
"그럼에도 그들은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1894년 10월, 우금치 전투
동학군은 북상하여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결전을 벌였다.
전투는 치열했다.
며칠 후, 소식이 전해졌다.
"동학군이... 패배했답니다..."
"우금치에서..."
"수천 명이 전사했다지..."
제자들은 울먹였다.
기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 안 됩니다!"
"괜찮다... 일어나야 한다..."
기영은 제자들을 보았다.
"너희는... 울지 마라..."
"하지만 스승님..."
"동학군은 패배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패배하지 않았다."
기영은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보여주었다. 백성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백성도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
"이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1894년 11월, 전봉준의 체포
전봉준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전봉준 장군이 잡혔다오..."
"순창에서..."
"이제 끝이구나..."
마을은 비통에 잠겼다.
기영은 그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님..."
"...전봉준..."
기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는 백성을 위해 일어섰다. 역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기영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것을 기록해 두어라."
"기록을요?"
"그렇다. 동학농민운동의 모든 것을. 그들의 요구, 그들의 싸움, 그들의 희생을."
"왜 그래야 합니까?"
"후세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백성이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1894년 12월, 갑오개혁의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동학농민운동은 갑오개혁을 촉발했다.
일본의 압력 아래, 조정은 개혁을 단행했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오!"
"과거제도 폐지된다지!"
"여러 개혁이 이루어진다던데!"
제자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스승님! 큰일입니다! 신분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기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냐?"
"예! 이제 양반도 상민도 법 앞에 평등합니다!"
기영은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마침내 이 날이 왔구나..."
"스승님께서 평생 바라시던 일입니다!"
"그렇다... 나는 평생 이것을 기다렸다..."
기영은 제자의 손을 잡았다.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그러나 기영은 곧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지만요?"
"이 개혁은... 우리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
"그리고 동학군은 진압되었다. 수만 명이 죽었다."
기영은 씁쓸하게 말했다.
"우리는 개혁을 얻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수만의 목숨을 잃었고, 외세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894년 겨울, 성찰
눈이 내리는 겨울날, 기영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
"예, 서방님."
"나는 일생을 돌아보고 있소."
"..."
"나는 평생 개혁을 꿈꾸었소. 신분제 폐지, 교육의 확대, 백성의 권리..."
"그렇지요."
"그리고 이제 그 일부가 이루어졌소. 신분제가 폐지되었소."
기영은 창밖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소."
"무엇이 다르셨나요?"
"나는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을 상상했소. 깨어있는 지도자가 백성을 이끄는 것을."
"..."
"그러나 현실은 달랐소. 백성이 먼저 일어났소. 동학군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소."
기영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외세가 개입했소. 우리 스스로 개혁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개혁이 이루어졌소."
"서방님..."
"나는... 부끄럽소. 나는 평생 무엇을 했는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백성들은 죽창을 들고 싸웠소."
연화는 남편을 안았다.
"서방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부인..."
"서방님께서는 더 중요한 일을 하셨습니다.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연화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학군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중 일부가 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폐정개혁안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서방님께서 가르친 제자들 중 일부는 동학군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서방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입니다."
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는구나."
1895년 1월, 교훈
새해가 밝았다.
기영은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
"예, 스승님."
"지난해 우리는 큰 사건을 목격했다. 동학농민운동."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한 제자가 대답했다.
"백성의 힘을 배웠습니다."
"그렇다. 또 무엇이 있느냐?"
다른 제자가 대답했다.
"외세의 위험을 배웠습니다."
"좋다. 또?"
"개혁의 필요성을 배웠습니다."
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옳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있다."
"무엇입니까?"
"준비의 중요성이다."
기영은 힘주어 말했다.
"동학군은 용기가 있었다.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했다."
"..."
"신식 무기가 없었다. 조직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외교적 지원도 없었다."
기영은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는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야 한다.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이 필요하다. 조직이 필요하다. 전략이 필요하다."
"예, 스승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무엇입니까?"
"의로움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1895년 봄, 전봉준의 처형
3월, 전봉준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전봉준 장군이... 교수형에 처해졌답니다..."
"한양에서..."
제자들은 통곡했다.
기영도 눈물을 흘렸다.
"전봉준... 그대는 영웅이었소..."
기영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전봉준을 기억해라."
"예, 스승님."
"그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실패하지 않았다."
기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 평등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
"그 날이 올까요?"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에필로그: 동학농민운동의 의미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했다.
수만 명이 죽었고, 지도자들은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것은 컸다.
첫째, 신분제 폐지를 포함한 갑오개혁이 이루어졌다.
둘째, 백성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기영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기록했다.
그가 남긴 기록은 후세에 전해졌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다. 미완의 혁명이다."
기영의 평가였다.
"그들이 시작한 것을 우리가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기영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을 기억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가들은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전봉준의 후예다."
"우리는 동학군의 뜻을 이어간다."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