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71)

이기영의 죽음

by 이 범

1896년, 기영의 죽음
기영은 1896년 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마을 전체가 나서서 치렀다.
양반도, 상민도, 그가 가르친 모든 제자들이 모였다.
"스승님께서는 진정한 선비셨습니다."
"평생을 백성을 위해 사셨습니다."
"신분의 벽을 허문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동생 기채는 형의 관 앞에서 말했다.
"형님, 편히 가십시오. 형님께서 뿌린 씨앗은 자라고 있습니다."
막내 동생 채연은 형을 위해 애도의 노래를 불렀다.
"저 건너 남산 위에, 소나무 자라네..."
목소리는 떨렸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기영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선비 이기영지묘
(1815-1896)
書中有路
책 속에 길이 있다


후일담
기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갔다.
각지에서 서당을 열어 백성을 가르쳤다.
1910년 경술국치 때, 그의 제자들은 울었다.
"스승님께서 이것을 보셨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까."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내내, 그들은 은밀히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
"우리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고."
1945년 광복이 되었을 때, 기영의 손제자 들은 스승의 묘 앞에 모였다.
"스승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묘 앞에서 절을 올렸다.
기영이 세운 영산 서당은 초등학교가 되었다.
교문 앞에는 기영의 흉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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