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80)순간 놓치기

샤터넘어 순간들

by 이 범

순간 놓치기

Q: 왜 사진 찍느라 순간을 놓칠까요?

A: 기록하려다 경험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때때로 폰을 내려놓고 그냥 느끼기"입니다. 최고의 기억은 마음에 저장됩니다.

2025년 5월의 첫 주말, 서울역 대합실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전 9시 15분 KTX를 기다리며, 민준은 스마트폰을 들어 여자친구 수아를 찍었다. 그녀는 베이지색 린넨 원피스를 입고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서울역 대합실

"수아야, 이쪽 봐."

민준의 목소리에 수아가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찰칵. 완벽한 샷이었다. 민준은 곧바로 사진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빠, 우리 벌써 몇 장 찍은 거야?" 수아가 웃으며 물었다.

"음... 집 나올 때부터? 한 서른 장?"

둘은 같은 IT 스타트업에서 만나 사귄 지 1년 6개월째였다. 민준은 프론트엔드 개발자, 수아는 UX 디자이너였다. 회사에서는 비밀 연애를 했지만, 회사 밖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한 연인이었다.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회사 일로 정신없이 달려온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함께 보내는 2박 3일 휴가였다. 민준은 석 달 전부터 여수 여행을 계획했고, SNS에서 '인생샷 명소'를 검색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케이블카, 향일암, 오동도, 낭만포차거리... 총 스물두 곳의 포토존이 그의 노션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었다.

"오빠가 짠 일정표 봤는데, 진짜 빡빡하던데?" 수아가 KTX에 오르며 말했다.

"그래야 다 볼 수 있잖아. 걱정 마, 재밌을 거야."

열차가 출발하자, 민준은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수아의 얼굴을 또 찍었다. 수아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 스쳐가는 미세한 아쉬움을 민준은 미처 보지 못했다.

여수에 도착한 건 오후 12시 30분. 민준은 곧바로 첫 번째 목적지인 여수 해상케이블카로 향했다. 주말이라 대기 줄이 길었지만, 민준은 개의치 않았다. "인생샷을 위해서라면 기다릴 만하지."

케이블카 탑승권을 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민준은 수아의 사진을 찍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케이블카를 배경으로, 햇살을 받은 옆모습을...

"오빠, 우리 그냥 좀 앉아 있을까? 다리 아파."

"조금만 참아. 곧 탈 수 있어. 저기 봐, 케이블카 안에서 찍으면 진짜 예쁘대."

드디어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투명한 바닥을 통해 아래 바다가 보이는 크리스털 캐빈이었다. 민준은 흥분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수아야, 저기 서봐. 저 각도가 제일 예쁘게 나와."

수아는 지시받은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카메라가 아니라 창밖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아름다웠다.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오빠, 저기 봐. 갈매기가..."

"응응, 나중에 보고. 일단 여기 포즈 한 번만 더."

수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준은 카메라에 집중했다. 수아는 입을 다물었다. 갈매기는 이미 멀리 날아가버렸다.


오후 3시, 두 사람은 오동도에 도착했다. 유명한 동백나무 숲길이 있는 곳이었다. 민준은 사전에 조사한 베스트 포토존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여기! 여기가 그 유명한 곳이야. 저 벤치에 앉아봐."
수아는 벤치에 앉았고, 민준은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10장, 20장, 30장... 같은 장소에서만 40장 넘게 찍었다.
"오빠, 이제 그만 찍고 우리 좀 걸을까? 이 길 진짜 예쁜데."
"잠깐만, 빛이 지금 딱 좋아. 조금만 더."
수아는 미소를 유지했지만, 그 미소는 점점 굳어갔다. 민준은 사진 속 그녀만 보고 있었다. 실제 그녀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한 시간 뒤, 둘은 향일암으로 향했다. 해돋이로 유명한 사찰이지만, 민준이 온 이유는 달랐다. 바위 위 정자에서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핫했기 때문이다.
"수아야, 저기 올라가. 저기서 찍으면 대박일 거야."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수아는 숨이 찼다. 하지만 민준은 앞서 걸으며 휴대폰으로 각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정자에 도착했을 때, 수아는 난간에 기대서서 숨을 골랐다. 눈앞에 펼쳐진 남해 바다가 장관이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빠... 이것 봐. 진짜 아름답다..."
수아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묻어났다. 그녀는 그 순간, 그 풍경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고, 파도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사진 진짜 잘 나오겠다. 자, 이쪽 봐봐."
민준은 이미 카메라 앱을 켜고 있었다. 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실망이 스쳤지만, 민준의 눈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좀만 왼쪽으로. 아니, 오른쪽. 고개를 살짝 들어봐. 미소는 자연스럽게."
수아는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석양의 순간을, 그들은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만 나눴다.
저녁 7시, 둘은 낭만포차거리에 도착했다. 형형색색의 전등이 거리를 밝히고, 갓 구운 해산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활기찬 분위기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여기다! 여기서 사진 찍어야 해."
민준은 가장 사진이 잘 나온다는 포장마차 앞으로 수아를 이끌었다. 실제로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오빠, 나 진짜 배고픈데. 먼저 먹고 찍으면 안 돼?"
"사진부터 찍어야지. 음식 나오면 김 다 빠지잖아. 자, 저기 앉아봐."
수아는 한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민준은 메뉴판, 술잔,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하게 배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음식이 나오자 또 찍었다. 수아가 젓가락을 들려고 하면 "잠깐만, 한 장만 더"라며 막았다.
15분 뒤, 드디어 식사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음식은 이미 식어 있었다. 수아는 차가워진 전을 입에 넣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오빠, 이거 봐봐. 식었어."
"어? 미안. 너무 사진에 집중했나 봐. 다시 데워달라고 할까?"
"아니,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수아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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